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을 열어본 적 있는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화면 상단에 큼지막하게 붙은 '안전결제' 배지, 그리고 그 아래 적힌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안전하게 거래하세요'라는 문구를요. 대부분의 이용자는 이 문구를 보며 별다른 의심 없이 거래를 시작합니다. 플랫폼이 알아서 안전을 책임져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통계를 보면, 이 믿음이 얼마나 헐거운 토대 위에 서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3년 새 10배로 불어난 피해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나라,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주요 중고거래 플랫폼을 피신청인으로 한 피해구제 신청은 175건으로, 전년 82건보다 두 배 넘게 늘었습니다. 3년 전인 2022년 18건과 비교하면 10배에 가까운 증가입니다. 당근마켓만 놓고 봐도 2021년 3건이던 접수 건수가 지난해 88건으로 뛰었습니다. 직거래 사기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숫자는 더 커집니다. 2021년 약 8만 건이던 직거래 사기 피해는 지난해 약 12만 건으로 늘었고, 피해액은 2574억원에서 8741억원으로 3배 이상 불어났습니다. 거래량이 늘어난 만큼 사기도 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증가 속도가 거래량 증가 속도를 훨씬 앞지른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입니다.
안전결제는 왜 무력해질까
안전결제 시스템은 구매자가 대금을 플랫폼에 먼저 맡기고, 물건을 받아 확인한 뒤에야 판매자에게 돈이 넘어가는 구조입니다. 이론대로라면 사기가 끼어들 틈이 크지 않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양쪽 모두 이용하겠다고 동의했을 때만' 작동한다는 데 있습니다. 판매자가 수수료를 아끼겠다며 직거래나 계좌 직접 송금을 유도하면, 구매자가 조금이라도 응하는 순간 안전장치는 그대로 무력화됩니다. 실제로 저가의 인기 상품일수록, 혹은 '지금 아니면 놓친다'는 조바심을 자극하는 거래일수록 이런 유도가 잦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플랫폼은 이용약관에 '직거래 시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어두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중개자인가, 책임 있는 운영자인가
더 눈에 띄는 변화는 예전에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문제로 여겨지던 중고거래 분쟁이, 이제는 구매자와 플랫폼 사이의 분쟁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플랫폼 쪽은 자신을 '거래 중개자'로 규정하며 개별 거래의 진위나 물건 상태까지 보증할 의무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안전결제라는 이름의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워 이용자를 끌어들인 이상, 그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책임을 나눠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피해가 발생해도 환급이나 보상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결국 피해자가 경찰서와 플랫폼 고객센터를 오가며 스스로 증거를 모아야 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
물론 정부와 플랫폼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플랫폼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이상거래 탐지를 도입했고, 경찰도 사이버사기 전담 인력을 늘려왔습니다. 그러나 신고 건수와 피해액이 매년 갱신되는 것을 보면, 대응 속도가 거래 규모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중고거래는 이제 특별한 소비가 아니라 일상적인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안전장치 역시 '있으면 좋은 부가 서비스'가 아니라 플랫폼 운영의 기본 조건으로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중고거래 앱을 켤 때마다 보게 되는 그 안전결제 배지를,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우리를 지켜주는지, 아니면 안심하라는 신호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제도가 촘촘해지기 전까지는 이용자 스스로 거래 상대의 이력을 확인하고, 조금 번거롭더라도 안전결제를 끝까지 이용하는 습관이 최선의 방어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만 떠넘기는 구조가 계속되어도 괜찮은 것인지는, 한 번쯤 짚어볼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