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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이런 재미, ‘해적: 도깨비 깃발’이라 가능하다
2014년 866만 흥행 전편 설정 빼고 전면 리부트…‘B급 재미’
장점만 극단적으로 살린 전개… 개연성 제외한 상상력 설정↑
2022-01-14 01:05:00 2022-01-14 01:05: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사실 이 정도는 돼야 대놓고 B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따지고 보면 이건 B급이 아니다. ‘트리플 B’ 정도는 된다고 해야 할까. 고려 말 조선 초, 동해 앞바다에 서양식 범선이 둥실거리며 떠다닌다. 당시 중국에서 건너온 화포라 하지만 엄청난 화력을 지닌 대포 수준이 등장한다. 가장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건 남극 대륙에 사는 펭귄이 버젓이 나온다. 바다 한 가운데에선 거대한 불기둥이 뿜어져 나오고 돼지 오줌보에 공기를 집어 넣은 채 바다 속을 10여분 이상 잠수하면서 빠른 해류를 따라 헤엄쳐 다닌다. SF영화도 이 정도면 욕먹기 딱 좋다. 근데 이게 묘하게 어울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게 이 영화에는 너무 잘 어울린다. 이래야 이 영화 정체성이 딱 들어 맞을 것 같다. 그래서 B급을 넘어 트리플 B은 되고도 남는단 얘기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해적: 도깨비 깃발이다.
 
 
 
2014 8월 개봉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동시기 개봉작이자 역대 국내 개봉 영화 최다 관객 동원작 명량과 함께 당시 흥행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작품이다. 명량이 누적 관객 수 1761만을 끌어 모았고, ‘해적: 바다로 간 산적 866만을 동원했다. 국내에선 시도조차 못했던 해양 어드벤처 장르를 상업 영화 시장에 선보인 첫 번째 작품이었다. 그리고 8년 뒤 속편 해적: 도깨비 깃발이 등장한다. 전편 출연진이 모두 하차하고 새로운 라인업이 꾸려졌다. 기본적 콘셉트만 유지한 채 스토리라인도 전면 리부트됐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시대적 배경이자 영화적 시간은 실제 역사적 사건에서 끌어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 된지 얼마 뒤다. 고려 왕조 무관 출신이지만 현재는 부하들과 의적 행세를 하는 무치(강하늘)는 관군들에게 쫓기다 망망대해에 표류하게 된다. 죽음 직전 해적단 단장 해랑(한효주)에게 구조된다. 그리고 몇 달 뒤. 무치는 해적단 포로이자 노예 그리고 객식구로 해랑의 해적단 골치거리가 된다. 무치의 뻔뻔함은 해랑과 해적단 단원들의 가장 큰 문제다. 사사건건 해랑 그리고 해적단과 부딪치며 바다 위 생활을 이어가던 무치와 부하들. 우연히 바다 한 가운데에서 왜구의 상선 한 척을 발견한다. 해랑의 해적단은 왜구의 배를 상대로 노략질을 하던 좋은 해적들이다. 무치와 해랑 그리고 그들의 부하들은 왜구의 배를 습격,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물건을 손에 넣는다. 패망 직전 고려 왕실이 보유했던 막대한 양의 보물이 숨겨진 지도다. 무치와 해랑 그리고 그들 부하인 의적들과 해적단은 지도에 나타난 비밀의 섬으로 출발한다. 문제는 이 보물을 노리는 인물이 또 있단 점.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게 접근한 부흥수(권상우). 그는 무치와 과거 악연으로 얽힌 사이. 또한 막대한 제물을 손에 넣어 자신의 근거지인 탐라(제주)의 왕이 될 꿈을 꾸는 야심가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해적: 도깨비 깃발은 전편 해적: 바다로 간 산적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다. 우선 바다가 무대인 점은 같다. 해적이 등장하는 것도 같다. 해적과 함께 손을 잡는 또 다른 패거리(의적)가 존재하는 것도 같다. 이 소스를 갖고 시나리오를 쓴 작가(천성일)도 전편과 마찬가지로 같다. 다른 점은 연출. 쩨쩨한 로맨스’ ‘탐정: 더 비기닝을 연출한 김정훈 감독이다. 김 감독은 충무로에서 유명한 각색 작가다. 시나리오 자체의 힘과 색깔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각색 작업에 탁월한 재능을 보유한 연출자다. 여기에 출연 배우들 모두 전편과 다르다. 맛은 비슷하다. 근데 재료가 다르다. 그렇게 만들어 진 영화 실제 맛은 전편보다 더 색다르다. 별미라고 하면 딱 들어 맞는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해적: 도깨비 깃발은 과감한 선택을 했다. 단점이라 불릴 만한 지점을 버리고 또 버렸다. 장점이 될 만한 지점은 극단적으로 살리고 또 키웠다. 이런 선택 안에서 국내 상업영화 평가 잣대의 전매특허가 될 개연성은 깨끗이 휘발된다. 이건 쉽게 말하면 재미만 남기고 그 외의 것은 싹 다 지워 버린모양새다. 맥락과 설정의 정당성 그리고 스토리 연결과 납득의 요소는 이 영화에선 사치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오프닝의 스펙터클 이후 코미디로 전환된 흐름은 액션과 슬랩스틱 그리고 코미디와 상황극이 오만가지로 뒤섞이면서 쉴새 없이 관객을 자극 시킨다. 언뜻 집중도가 떨어지는 산만한 흐름처럼 다가올 수 있지만 앞서 언급한 재미만 남기도 그 외에 모든 것을 지워버렸으니 자극의 심도는 상당히 강하다. 강한 자극만 들어오기에 시간 흐름에 따라 무던해질 수도 있다. 그런 지점에선 적절한 스펙터클을 집어 넣어 체감도를 높인다. ‘해양 어드벤처설정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모양새다. 쉴새 없이 볼거리가 쏟아지고 쉬는 타이밍에는 웃음으로 강약을 조절한다. 그 사이에는 압도적인 비주얼로 포인트를 준다. 관람의 쉼표가 없다. 그런데도 숨을 고르고 따라가게 만드는 여유가 느껴진다. 묘한 매력이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런 매력의 근원은 해적: 도깨비 깃발 B급 감성일 듯하다. ‘고려 말 조선 초 시대적 배경 외에 이 영화 속 모든 설정은 전부 만화적이다. 동해 앞바다에 존재하는 번개 치는 신비의 섬, 바다 한 가운데에서 솟아오르는 불기둥과 거대한 소용돌이 그리고 바다 속 흐르는 거대한 강의 비주얼은 상상력과 사극 그리고 어드벤처 장르 결합이 가져온 스크린 엔터테이닝의 긍정적 결과물이다. 특히 이 섬에 사는 펭귄의 존재는 개연성과 흐름의 정당성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설정의 개념을 넘어선다. 물론 다시 언급하지만 재미만 있으면 되고 실제로 재미도 있으니 해적: 도깨비 깃발 전매특허로 손색 없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나마 전편과 이번 속편 차이는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에 있을 듯하다. 전편은 김남길 손예진의 적절한 상황적 코미디와 유해진의 예상치 못한 타이밍적 코미디가 압권이었다. 이번 속편은 모든 배우들이 이 역할을 고루 나눠진다. 동시다발성 코미디가 터진다. 영화 하이라이트에 등장하는 권상우 강하늘의 검술 액션도 충분히 만족도를 느낄 만큼 강렬하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해적: 도깨비 깃발은 머리를 비우고 접근해야 한다. 영화는 여러 조건이 만나 만들어 낸 상황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캐릭터들이 만들어 낸 결과를 얘기하는 수단이다. ‘해적: 도깨비 깃발은 이 과정에서 재미만 극단적으로 키워버렸다. 근데 그 재미가 꽤 즐길만하다. 이런 재미, ‘해적: 도깨비 깃발이라 가능하다. 개봉은 오는 26.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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