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한국 경제가 1%대 저성장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지속되는 내수 침체와 미국 대선 이후 커진 대외 불확실성을 반영해 내년은 물론, 내후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잠재성장률(2.0%)보다 낮은 1%대로 제시하면서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는데요.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에 따른 보호무역 강화와 중국과의 경쟁 심화 등으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경쟁력마저 떨어지면서 저성장 경고음이 커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저성장이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됐다는 우려도 나오는데요. 혁신 지체 등으로 인해 구조적 저성장이 고착화될 경우 '제로 성장'에 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2025년 1.9%·2026년 1.8%…'저성장 고착' 예고
3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한은은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우리나라 실질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4%에서 2.2%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일본 장기 불황 직전보다 낮은 수준인데요. 일본은 자산시장 거품 붕괴와 함께 1990년대 들어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는데, 성장률 추이를 보면 1991년 3.5%에서 1992년 0.9%, 1993년 -0.5%로 급격히 떨어진 뒤 30년간 0%대 '제로 성장'에 갇혔습니다.
문제는 내년 이후입니다. 한은은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8월 2.1%에서 0.2%포인트 낮춘 1.9%로 제시했는데요. 2026년 성장률 전망치도 1.8%로 내다보면서 2년 연속 2% 성장률을 밑돌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 같은 흐름은 일시적인 경기 부진이 아닌 일본처럼 장기 불황의 문턱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경고음으로도 해석됩니다.
실제 한은과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성장률은 5년 단위로 1%포인트 안팎씩 떨어졌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고 난 2001~2005년에는 연평균 5.02% 성장하며 비교적 양호한 성장세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2006~2010년 연평균 4.36%, 2011~2015년 3.12%, 2016~2020년 2.28%로 꾸준히 둔화했습니다.
한은 분석대로 올해 2.2%, 내년 1.9% 성장률 전망을 적용할 경우 2021~2025년에는 연평균 2.56% 성장할 전망인데요.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0.7% 역성장한 뒤 2021년 4.6% 반등한 이례적 변수를 제외하면 2010년대 후반 약 3%에서 2020년 초반 약 2%로 성장 둔화세가 뚜렷합니다. 여기에 1%대 성장률 전망까지 속속 나오는 만큼 202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1%대 저성장이 뉴노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잠재성장률입니다. 한은이 추정한 우리나라 잠재성장률 추이를 살펴보면 △2011~2015년 3.1~3.2% △2016~2020년 2.5~2.7% △2019~2020년 2.2% 내외 △2021~2022년 2% 내외 등으로 하향세가 뚜렷한데요. 한은은 이르면 연말까지 새로 추정한 잠재성장률을 내놓을 예정인 가운데, 기존 2% 안팎에서 1%대로 낮출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1%대로 본다는 의미로, 이럴 경우 저성장 고착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는 평가입니다.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 위기감이 짙어지면서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부산 남구 신선대 및 감만 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경제 버팀목 '수출' 위기감…식어가는 성장 엔진
저성장 전망 배경에는 그간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에 대한 위기감이 자리합니다. 이 같은 위기감은 이창용 한은 총재의 발언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데요. 이 총재는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주력 업종에서 중국 등 주요국과의 경쟁이 심화되는 구조적 문제가 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커진 교역 환경의 불확실성도 일부 반영해 수출 증가율이 예상보다 상당 폭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내년은 주요 수출 업종의 경쟁 심화, 보호무역 기조 강화 등의 요인으로 수출 증가율이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2026년은 트럼프 2기의 관세 인상 영향이 본격화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수출 위기감이 더욱 짙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산업연구원 역시 '2025년 경제산업전망' 보고서를 통해 "자동차·철강·정유·석유화학·섬유·반도체·디스플레이 등 7개 산업 분야가 중국발 공급 과잉의 여파에 휘말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여기에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도 저성장 원인으로 지목되는데요. 저출생·고령화 문제는 물론, 만성적인 재정 적자 구조 속에서 신산업 발굴과 혁신 지체 등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더불어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정치권의 극한 갈등은 경제 위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저성장 고착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구조개혁과 함께 혁신기업 육성 등 신산업 먹거리 발굴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는데요.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내년부터는 잠재성장률이 1%대로 낮아질 수 있다고 본다"며 "1%대의 저성장의 위기 속에서도 한국 경제의 역동성과 혁신성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구조개혁과 신산업 육성 등으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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