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가르쳐준 일본…한국에 LNG 기술 요청
40여년 만 역전…위상 달라진 조선업계
일, 2035년부터 LNG선 연 최대 5척 건조
최근 중동 사태로 LNG 수급난 심화 배경
업계, 손익 계산 분주…“기술 유출 우려”
2026-06-16 14:17:14 2026-06-16 15:18:06
[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일본 정부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분야에서 국내 조선업계에 기술 협력 및 이전 요청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과거 일본으로부터 생산 방식과 운영 체계를 배웠던 한국이 이제는 일본의 LNG선 재건을 도울 위치에 오른 것입니다. 국내 조선업계는 설계 지원과 품질관리, 기자재 공급 등 고부가 영역에서 새로운 수익 기회를 기대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기술이전에 따른 경쟁력 약화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일본 시코쿠에 위치한 이마바리 조선소. (사진=이마바리조선 홈페이지)
 
16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달 말 발표할 ‘민관 투자 로드맵’에 자국 LNG선 건조 역량 확보를 위해 국내 조선사와 기술 협력을 추진하는 방안을 담을 전망입니다. 일본은 이마바리조선, 가와사키중공업, 나무라조선소 등을 중심으로 2035년부터 연간 3~5척의 LNG선을 건조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한다는 목표입니다. 현재 약 100척의 LNG선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은, 연간 5척 안팎의 LNG선을 자국에서 건조할 경우 필요한 수송 능력을 자체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본이 LNG선 산업 재건에 나선 배경에는 경제 안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발전용 연료와 도시가스 공급에 쓰이는 LNG 수요의 약 9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섬나라 특성상 파이프라인보다 선박 수송 의존도가 높은 데다, 최근 중동 전쟁으로 에너지 수급 불안이 심화되면서 LNG선 건조 역량 확보에 속도를 내는 것입니다.
 
문제는 기술과 공급망입니다. LNG선은 영하 163도의 액화천연가스를 저장·운송하는 고부가 선박으로, 높은 수준의 설계·건조 기술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일본은 5년 이상 LNG선을 건조하지 않으면서 관련 공급망이 약화된 상태입니다.
 
특히 현재 글로벌 LNG선 시장 표준인 멤브레인형 LNG 화물창 제작 기술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멤브레인 방식은 각형 화물창을 선체와 일체화하는 구조로 저장 효율과 운송 경제성이 높지만, 기술 난도가 높습니다. 일본은 둥근 탱크를 선체에 배치하는 모스 방식을 중심으로 LNG선을 건조해 왔습니다.
 
일본이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과 협력을 통해 LNG선 건조 경험과 화물창 관련 노하우를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이유입니다. 관련 기술 라이선스를 보유한 프랑스 기업과의 협력도 검토할 계획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기술이전 요청을 두고 한일 조선업의 위상이 바뀐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국내 조선업계는 1970~80년대 세계 조선 시장을 주도하던 일본 조선소의 생산 방식과 운영 체계를 따라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40여년이 흐른 지금 일본이 한국에 기술이전을 요청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다만 국내 조선업계는 이 같은 상징성과는 별개로 손익 계산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일본 조선업계와의 협력이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시운전 모습. (사진=HD현대)
 
협력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조선사가 직접 선박을 건조하지 않더라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설계 지원과 공정 관리 등 고부가 영역에서 기술료와 엔지니어링 수익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기자재와 생산 자동화 분야에서도 협력 여지가 있습니다. 일본은 선박 기자재와 로봇, 자동화 설비 등에서는 여전히 강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한국 조선사가 LNG선 기술을 기반으로 협력 주도권을 잡는 동시에, 일본의 기자재·자동화 역량을 접목할 경우 양측 모두 실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중국 견제 효과도 거론됩니다. 최근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LNG선 시장에서 빠르게 추격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술과 품질관리 체계가 반영된 한일 협력 모델을 만들 경우, 일본 선사의 LNG선 발주를 한일 공급망 안에 묶어둘 수 있습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유럽과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 조선업을 키웠던 한국이 이제는 선진 조선국에 LNG선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점에서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이어 “한국 조선사가 엔지니어링 관련 비용을 받고 건조를 지원하는 방식은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다”며 “한국형 화물창의 시장 확대나 일본의 기자재·로봇·자동화 설비 역량을 활용하는 방식의 협력도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핵심 기술 유출 우려는 부담입니다. LNG선 건조 노하우와 생산·품질관리 역량을 과도하게 이전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경쟁자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위원은 “중국과의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이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면서 일본 시장을 어떻게 함께 가져갈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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