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경 기자]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목표 비중과 자산배분 허용 범위를 확대했지만, 증시 급락 국면에서 적극적인 매수에 나서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과거 증시 급락 때마다 주식을 사들이며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했던 연기금이 이번 하락장에서는 제한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확대된 자산배분 허용 범위가 실제 위기 대응 여력으로 이어졌는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국내 주식 비중 확대가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연금은 중장기 계획에 따라 운용하는 만큼 단기 시장 상황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2~13일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약 6조5620억원을 순매도했습니다. 반면 연기금 등의 순매수는 약 1964억원에 그쳤습니다.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에도 연기금 등의 매수 규모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습니다. 과거 국민연금은 증시 급락기에 대규모 주식 매수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연간 약 18조300억원,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때는 약 12조8410억원을 순매수했습니다.
국민연금의 급락장 대응을 둘러싼 논란은 자산배분 허용 범위상 추가 매수 여력이 남아 있다는 분석과 맞물려 있습니다.
대신증권(003540)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이 9월18일 기준 24.4%로 낮아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올해 목표 비중인 20.8%를 3.6%포인트 웃도는 수준이지만, 국내 주식 전략적 자산배분(SAA)과 전술적 자산배분(TAA) 허용 범위를 고려하면 최대 약 80조원의 추가 매수 여력이 남아 있다는 분석입니다.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실기했다는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지금 추가 매수에 나서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산배분 허용 범위상 매수 여력이 남아 있더라도, 리밸런싱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실제 운용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국민연금이 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 같은 수급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변화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5월 국내 주식 SAA 허용 범위를 기존 목표 비중 대비 ±3%포인트에서 ±6%포인트로 확대했습니다. 국내 주식 비중이 목표치를 웃돌더라도 매도 압력을 줄이고, 시장 상황에 따라 자산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평가액은 4월 말 419조5000억원에서 6월 말 543조2000억원으로 약 123조7000억원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금융자산에서 국내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도 25.13%에서 29.13%로 4.00%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이후 증시 하락으로 7월 말 평가액은 418조6000억원, 비중은 24.87%로 낮아졌지만 올해 목표 비중인 20.8%를 여전히 웃돌았습니다.
최 교수는 "허용 범위를 넓혀놨지만 이미 한도에 차 있어 추가로 들어갈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당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의 장밋빛 전망이 실현됐다면 비중 확대가 적절한 선택이었을 수 있지만, 이후 시장 여건이 달라지면서 결과적으로 아쉬운 판단이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단기적인 시장 변동에 따라 장기 자산배분 전략을 바꾸는 게 아니라, 애초 허용 범위 확대의 근거가 된 장기 수익률 전망이 여전히 유효한지 점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국민연금 측은 자산배분 허용 범위 확대가 급락장 매수 여력을 제약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백금옥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부장은 "자산배분 허용 범위는 국내 주식만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금융자산과 자산별 비중, 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정한다"며 "중기 자산배분 계획도 5년 단위로 수립하는 만큼 단기적인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한편,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리밸런싱 유예와 목표 비중 상향 결정의 경위를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였습니다. 야당은 정부의 증시 부양을 위한 정치적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기금운용위원회 회의록 공개 등을 요구했고, 여당과 국민연금은 시장 상황을 고려한 정상적인 운용 결정이었다고 반박했습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14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의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현경 기자 khk@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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