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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의 세상
오늘 부는 바람은
2016-08-31 16:35:20 2016-08-31 16:35:20
0.
 
선우. 2013년 10월생. 흰 털의 잘 생긴 진돗개. 전라북도 고창군의 어느 장어 식당에서 태어나, 구암리 산 중턱 큰 바위에 앉은 절 수선암에서 자랐다. 처음에는 꼭 닮은 쌍둥이 누나 강아지와 함께 왔지만 하도 싸워서 누나는 옆 동네로 보냈다. 아니, 사실 선우가 일방적으로 누나 강아지에게 혼났다. 선우는 어렸을 때부터 착한 개였다.
 
사진/바람아시아
 
1.
 
농약을 잘못 먹기도, 하수구에 끼어 가까스로 탈출하기도 했지만 절 주인 송 보살님의 보살핌 아래 선우는 네 다리가 길쭉하게 뻗은 건강한 청년 개로 무럭무럭 자랐다. 선우는 드넓은 공터를 마음껏 누볐다. 절의 제일 꼭대기 산신각부터 본당과 암자 주변, 마당, 돌 계단 등 수선암의 모든 곳이 다 선우의 왕국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우는 자신의 왕국에서 임무를 수행하느라 바빴다. 누군가 절에 기도하러 올라가거나, 집과 떨어진 화장실에 갈 때, 잡초를 뽑으러 갈 때도 선우는 항상 앞장서서 함께 갔다. 신발을 물어다 장난을 치거나 뒤집어지며 애교를 부리고, 대나무 숲을 쏘다니며 쥐도 잡고, 낯선 사람이 보이면 가장 먼저 뛰쳐나가 짖는 절 지킴이 역할도 했다.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도 ‘선우야’ 하고 부르면 금세 눈앞으로 뛰어 왔다. 선우는 그렇게 착한 개였다.
 
사진/바람아시아
 
2.
 
나는 선우를 좋아했다. 선우는 ‘자유로운’ 개였기 때문이다. 선우를 알게 된 후로 나는 모든 개와 마주칠 때마다 선우를 떠올리게 되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유롭지 않은 모든 개들을 볼 때마다 그랬다.
 
인턴으로 근무 중인 회사 옆 대형 마트엔 애견 센터가 있다. 아홉 칸으로 나뉜 투명한 상자 모양 우리 안에 티컵 사이즈 말티즈와 갈색 토이 푸들 강아지들이 한 마리씩 들어 있다. 처음에는 인형인 줄 알았다. 인형처럼 예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아서, 무기력하게 누워 있어서 그랬다. 6개월, 인턴 임기 동안 나는 그 앞을 일곱 번 지나쳤고 강아지들은 계속 그 안에 있었다. 내 달력 여섯 장은 수명이 약 14년인 강아지들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3년 하고도 반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강아지들의 세상은 딱 그만한 크기의 투명 사각형, 하루 일과는 오로지 그 앞을 지나가며 유리를 콕콕 찌르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
 
사진/바람아시아
사진/바람아시아
 
어린 강아지, 늙은 개, 얼룩 강아지, 털이 검은 개, 복슬복슬한 개... 투명 케이스, 회색 철창, 튼튼히 박은 말뚝, 반지름 50cm도 안 되는 반원 모양대로만 움직이도록 매어 놓은 쇠사슬... 같은 땅, 같은 지구를 밟고 있지만 어떤 개들에게 세상의 크기는 평생 딱 코앞에 보이는 만큼으로만 정해진다.  
 
사진/바람아시아
사진/바람아시아
사진/바람아시아
 
3. 
 
자유를 만끽하던 선우의 신세가 바뀌었다. 지난 3월 아랫동네 초등학생 하나가 수선암에 올라와,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선우를 살살 부추겨 끌고 갔다. 그리고는 선우를 아랫동네 진돗개와 싸움을 붙였다. 어린 선우는 꼼짝없이 당했고, 피투성이가 된 몸을 끌고 힘겹게 긴 오르막길을 올라 수선암으로 돌아왔다. 서열싸움에 민감한 진돗개의 특성상 선우가 자꾸 아랫동네로 뛰어 내려가려 했기에, 송 보살님은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만들어 선우를 넣어 두어야 했다. 다행히도 착한 개 선우는 우리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 안에서만 얌전히 있었다.
 
사진/바람아시아
 
4.
 
우리 생활을 한 지 석 달째, 송 보살님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선우가 한 달 동안 절을 지켜야 했다. 가뜩이나 좁은 우리 안에 갇힌 신세인데, 혼자 남게 되어 우울증이 도질까 봐 잠깐 선우를 우리 밖으로 꺼내 목줄을 매어 산책시키기로 했다. 간만에 바깥에 나와 기뻐 뛰어 놀 선우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러나, 우리 문을 활짝 열어도 선우는 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꿈쩍도 안 하는 선우를 짐짝 옮기듯 안아 들고 마당에 내려놓았다. “선우야, 가자!’ 선우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좋아하는 치즈로 유인해도 소용없었다. 겁에 질려 웅크린 채로, 선우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땅 위에 엉거주춤하게 주저앉은 선우의 모습에 나까지 두 발을 짚고 서 있는 게 어색할 지경이었다. 우리 안에서 3개월(선우의 시간으로는 약 2년)을 지내고 나니 바깥 세상이 너무 넓었나. 자신의 왕국에서 펄쩍펄쩍 뛰던 선우는 온 데 간 데 없다. 선우, 걷고 뛰는 법을 잊어버린 모양이다.
 
사진/바람아시아
 
 
 
김서영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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