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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청년들에게 인간중심의 경제생활 문화를"
(사회적기업가를말하다)한영섭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장
사회적 부러움 대상 '대기업' 미련없이 박차… 재무상담가·사회적기업가 '변신'
"청년 부채 문제, 대안까지 마련돼야…정책 마련에 힘쓸 것"
2017-03-10 08:00:00 2017-03-10 08:00:00
[뉴스토마토 임효정·권익도기자] 백수가 더이상 '게으름'의 동의어가 아닌 시대다. 영어, 연수, 자격증 등 고스펙을 요구하는 기성세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취업문은 '하늘의 별따기'·'바늘구멍'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반성은 커녕 청년들에게 '노력도 않고 게으르다'며 삿대질을 한다. 설사 취직이 된다 해도 새시대가 열리는 것도 아니다. 학자금 대출과 월세로 통장 잔액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벼랑끝으로 내몰린 청년들. 2017년을 살고 있는 다음 기성세대의 모습이다. 이처럼 아픈 '헬조선 청년들'을 위해 그는 대기업을 버리고 나섰다. 사회적기업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의 한영섭 이사장이다. '인간 중심의 경제 생활'을 바라는 그의 에너지가 전국에 바이러스처럼 퍼지길 바란다.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청지트)는 지난 2013년 8월 청년생활협동조합인 ‘청년연대은행 토닥’의 부설기관으로 설립된 이후 청년들에게 돈에 대한 주도적인 습관을 기르는 상담과 교육을 진행하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2015년에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금융위원회로부터 사회적 협동조합 인증을 받았고 지난해 말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됐다.
 
우여곡절 겪으며 ‘재무’ 꿈 키우다
 
한영섭(사진) 이사장은 청지트 설립 이전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꿈을 키워 나갔다. 2003년 20대 초반에 대기업에 입사했고 관리직을 담당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재무 설계’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망 이후 가세가 기울었던 환경 탓에 ‘부’라는 키워드를 품고 살아온 그는 그 속에 인간의 생활과 철학이 담겨 있다고 느꼈다.
 
한 이사장은 관련 분야를 깊게 파기 시작했다. 직장을 병행하며 방송통신대를 다녔고 재무설계 자격증인 AFK까지 취득하면서 차곡차곡 준비했다. 그리고 2008년 아예 재무 설계를 업으로 삼아보자는 결심에 4년여 만에 대기업을 퇴사하게 된다.
 
“당연히 가족들 반대가 심했다. 입사 1년 만에 표창장도 받고 모범사원 얘기도 들었는데 그런 안정적인 직장을 왜 나오느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재무 분야에 대한 관심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추석날 다 모인 자리에서 공표했다.”
 
대기업을 나온 그 해 꿈을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다. 생명보험사에 입사해 재무상담을 시작했고 주머니를 털어 사비로 브로셔까지 제작해 직접 홍보하기도 했다. 영업력을 키우기 위해선 아무 곳이나 찾아가 프로포즈하는 대담함을 발휘해보기도 했다.
 
도전은 계속됐다. “기획하는 동시에 발로 영업을 뛰면서 많은 기회를 만들었고 지금의 내공을 기른 것 같다. 2009년에 보험사를 그만두고서도 여러 도전을 했다. 보험설계 대리점 만들었다 실패도 경험했다. 사회적기업 에듀머니와 관계를 맺고 재무 상담, 교육도 하면서 경제 철학을 다듬는 계기도 됐다.”
 
재무 관련 사회적 기업에 꾸준한 관심으로 2012년 6월에는 청년연대은행 설립을 준비하기도 했다. 특히 청년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당시 함께 병행하던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사업 일을 그만두고 2013년 2월 청년연대은행 ‘토닥’ 창립에 함께 한다.
 
“토닥은 기획 단계부터 청년들에게 대출 외에 다른 활동도 중요하다는 점을 알리는 데 목표를 뒀다. 그렇기 때문에 대출 상담 부분이 부족했다. 2013년 7월 조금 더 전문화시켜 봐야겠다는 생각에 부설 기관 형태로 청지트를 만들게 됐다.” 지금의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가 설립된 배경이다.
 
‘인간 중심’의 청년 위한 청지트
 
청지트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생활 경제의 상담, 교육, 소모임, 캠페인 등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에 청년 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개선을 촉구하자는 큰 틀 안에서 기존 금융사와는 차별화된 재무설계 솔루션을 제공한다. “보통의 금융회사는 대표 금융 상품 가입을 권유하는 식으로 상담이 진행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청지트는 공공성을 띄는 상담을 진행한다. 청년들에게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보고서를 만들어 오면 적정 대출 상담과 함께 사후 관리까지 해준다.”
 
이러한 상담 과정의 중심엔 청지트와 한 이사장 특유의 ‘인간 중심적’ 철학이 있다. 이는 단순히 ‘돈이 돼냐, 안돼냐’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벗어난다. 대신 인간적, 사회적 발전에 초점을 맞춘 활동이 결국은 삶의 질로 연결된다는 논리에 바탕을 둔다.
 
“돈벌이라는 프레임만으로 접근하면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사회 전체적인 삶의 가치 측면에서 바라 봐야 한다. 가령 예술 활동하는 젊은 친구들이나 주부들의 가사 노동들은 무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때로는 이들의 활동을 생산적인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센터에서는 청년들에게 이러한 가치를 중심에 둔 생활 경제 이야기를 해준다.”
 
그는 인공지능(AI)이 출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러한 철학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달하겠지만 그럴수록 인간 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이 더 주목받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최근 몇몇 국가에서 등장하는 ‘멍 때리기’ 대회도 굉장히 인간다운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런 시간을 가져야 인간만의 창조적인 활동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25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좋은 삶’을 살 수 있겠지 않을까 생각한다.”
 
“청년 위한 사회 정책적 변화 위해”
 
청지트의 사업은 대체로 공적 영역에서 공모 방식을 통해 조달 받아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시와 함께 ‘건강한 금융생활’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서울시복지재단에 청약통장 사업을 제안해 수행까지 맡았다. 이외에도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와의 협업,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상담 교육 등을 통해 ‘민관 협치’를 이루기 위한 활동들도 진행 중이다. 그는 이러한 활동들을 두고 “공공기관과 은행에서 청년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메꾸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청지트는 올해도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할 예정이다. 수익성의 관점보다는 청년들의 필요를 위한 사회적 역할의 기준에서 대학 내 상담센터를 만들고 지난해 20여명을 양성했던 상담사도 50~1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또 ‘빚쟁이유니온’이라는 금융 시민단체를 만들어 청년 금융의 소외를 예방하고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구상도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청년들의 부채 문제를 이슈화하고 소비하는 데서 그치고 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인 만큼 제대로 문제를 직시하고 구체적인 대안까지 마련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센터가 사회적 이슈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서 결국은 정책적 변화로 이어져야 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돈에 대한 고민들은 하나의 방법으로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다양한 역할을 해온 것이고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할 계획이다.”
  
한영섭 이사장이 청년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모습. 사진제공=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임효정·권익도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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