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새로운 대한민국의 '일상 민주주의'
2017-03-27 07:00:00 2017-03-27 07:00:00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1074일 만에 세월호가 인양됐다. TV 화면으로 인양 과정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삼켜야 했다. 세월호 선체를 확인하는 순간에는 모두 숨죽였다. 슬픔이 전국을 메웠다. 차분한 침묵은 역설적으로 시민들의 더 큰 노여움을 대변한다. 지난 토요일에는 21차 시민대집회가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열렸다. 세월호 진상 규명이 요구됐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아직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9명에 대해 염려했다.
 
무엇보다 이들이 9명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개인으로 불리는 게 새로운 대한민국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다. 2017년 시민대집회에서의 새로운 발견은, 잊고 있었던 개인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다. 1987년 민주화는 개인보다는 민주주의 일반에 대한 요구가 강력했다. 직선제 개헌을 통해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에게 국가 운영을 위임하는 것이 시대 정신이었다. 30년 후 시민대집회에서는 그간 잊고 있었던 '개인'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졌다. 
 
'내가 대표하는 나'가 중요해지고, 기존 정치인에게 내 정치적 권리를 대표되게 하거나 위임하기보다 내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광장에서 분출하고 있다. 대의제를 넘어 시민이 직접 정치와 정책에 자기 결정을 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광장에서 염원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직접 민주주의로의 확대다. 결국 요체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가 혼용되는 형태의 '일상 민주주의(Everyday democracy)'가 될 수밖에 없다.
 
5월9일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투표로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개헌의 과정은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수동적으로 개정안 찬반을 표시하는 데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시민들이 다양한 형태로 참여할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2010년 이후 개헌이 이뤄진 나라들 모두 시민참여형 헌법 개정이 이뤄졌다.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루마니아 등이 대표적이다.
 
2017년 시민대집회 이후 만개하고 있는 시민정치는 헌법 개정뿐만 아니라 정책 참여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공론의 장과 직장에서 그리고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온·오프라인을 통해 시민들이 정책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집행하는 다양한 형태들이 나타날 수 있다. '일상 민주주의'는 거창한 정치적 민주주의가 아니다. 보통 시민들이 일상의 삶 속에서 광화문광장과 같은 공적 공간의 공론 형성 과정에 참여하고, 직장 경험에서는 더 많은 권한을 위임받아 협력적으로 일하며, 100세 사회의 복지체계를 내다보는 공적 서비스를 누리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그간 국가와 시장이 소홀히 했던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찾는 것이 그 방법이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대의제로만 여겼기 때문에, 정치는 국회와 청와대 등 일부 정치권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또 일상에서의 정치는 대선과 총선 등 거대한 국가적 선거를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정수는 이것보다 간단하다. 민주주의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방식이든, 온라인처럼 가상공간이든 결국은 '관계' 안에서 발견된다. 관계는 다른 배경과 경험 그리고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의 집합적 단위(Collective unit)로 만들어 공동의 행동을 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관계를 통해 공동의 이익을 끌어낼 때 민주주의적 가치는 더 성숙하게 된다. 민주적 관계는 개인적 이익을 넘어 공동선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실현될 수 있다. 민주적 관계는 공적 공간, 직장 그리고 공적인 사회복지 영역에서 공동의 이해와 공동의 행동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다. 시민대집회는 공공선 못지않게 개인을 재발견하고 있다. 자유 시민인 개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결정하는 정책을 만들 때 기존 정치권을 통하지 않고 시민 개개인이 주체가 되길 원한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시민들이 공론과 정책을 공동으로 결정하고 공공서비스를 생산하길 바란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일상 민주주의의 정착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개인을 재발견하고 그를 바탕으로 공공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이다. 그 처음은 세월호 미수습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고 기억되는 것이다.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