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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진지 강화 및 재편성'이 필요하다
2017-05-10 06:00:00 2017-05-10 06:00:00
군사용어 가운데 ‘진지강화 및 재편성’이라는 것이 있다. 전투 중 목표고지를 점령한 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우선 초병을 세우고 전초병을 내보내 경계를 강화한다. 동시에 부대원 중 사망자와 부상자를 파악하고, 실탄과 개인 소총, 각종 중화기, 차량 등을 점검한다. 사망자와 부상자는 후방으로 후송 보내고 남은 병력을 추려 건제순으로 부대를 재편해야 한다. 화기 역시 멀쩡한 것을 골라 손질하고 주특기에 맞게 부대원들에게 배분한다. 특수화기를 새로 배당받은 부대원에게는 교육도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참호와 교통호를 파고 모래주머니로 진지도 만들어야 한다.
 
‘진지강화 및 재편성’을 하다보면 열에 아홉은 적군의 지역역습이 감행된다. 아무래도 전투에 지친 부대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적군은 이 점을 노린다. 빼앗긴 고지를 되찾을 수 없는 경우라면 적군으로서는 그 고지를 양측에서 바라보고 있는 견부고지라도 확보해야 한다. 이는 피아가 다를 수 없다. 전 세계 지상군의 공통 전술이기도 하다. 때문에 ‘진지강화 및 재편성’을 제대로 못하면 천신만고 끝에 목숨 바쳐 점령한 고지를 내줘야 한다. 목표고지를 지키더라도 견부고지 방어를 못하면 지근거리에서 적군의 집요한 고지탈환 시도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진지 강화 및 재편성’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전투의 마무리가 아니라 재공격을 위한 준비라는 점에 있다.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부대는 더 이상 싸울 수 없다. 목숨만 값없이 버릴 뿐이다. 요컨대 ‘진지 강화 및 재편성’은 전투의 끝이 아닌 시작인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선거기간 중 그를 가리켜 ‘문재수’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지만 사실상 재수 끝의 설욕전에 성공한 것이다. 그와 함께 더불어민주당도 명실상부한 여당이 됐다. 문 당선자도 당도 ‘잃어버린 9년’만의 고지탈환이다.
 
같은 시기인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우리나라는 어땠는가. 경제와 국고의 빈곤은 물론이고 인권, 정치적 의사표시의 자유 등이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졌다. 때문에 주위 열강들이 심심치 않게 국격에 대한 훈수까지 두는 모멸감을 맛봐야 했다. 최근에는 국민 절대 다수가 원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무기를 소수의 자의적 결정으로 우리 국토에 박아 놨다. 그리고는 돈을 내느니 마느니를 두고 다른 나라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 무기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이웃 국가 주석의 몽니 때문에 마음을 졸인다. 적폐가 똬리를 틀고 국정을 파먹는 동안 생긴 일이다.
 
적폐정부는 끝도 매우 좋지 않다. 영어의 몸이 된 전 대통령 대신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을 맡겨 둔 국무총리는 ‘세월호 참사 7시간’을 비롯한 일부 청와대 문건을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15~30년간 봉인하도록 했다. 총리의 주군에 대한 마지막 충성으로 국민의 열망은 마지막까지 짓밟혔다.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적폐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지를 빼앗긴 그 망령들은 더욱 광기를 품고 새 정부를 찢고 물어뜯을 것이다. 촛불혁명 초기 어둠으로 숨어들었던 세력이 새날이 임박하면서 건재한 몸을 드러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지를 탈환한 문재인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진지강화 및 재편성’이다. 적폐를 경계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상처 받은 국민들을 보듬어야 한다. 그 중에는 자신을 반대한 국민도 있다. 유능하고 청렴한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고, 흐트러진 공직기강을 다잡아 진지를 공고히 해야 한다. 북핵 문제와 사드 등 외교안보는 당장 진화해야 할 불덩이다.
 
‘진지 강화 및 재편성’이 허술하면 적폐세력에게 끝없이 시달리느라 임기를 그냥 보내게 된다. 저 전방의 더 높은 고지 점령은 꿈도 못 꾼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정권 쟁취의 흥에 취해 있으면 안 된다. 진짜 전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동안 야당이 패한 것이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당이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그렇듯 촛불이 응시하고 있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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