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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삼성 vs 엘리엇 그리고 크리스토퍼 힐
2017-05-19 06:00:00 2017-05-19 06:00:00
[뉴스토마토 권순철 기자] 필자는 남북관계가 순풍을 타던 참여정부 때 통일부와 외교부를 출입했다. 그 당시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파란 눈의 핸섬 가이'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미국 대사였다. 외교관으로서 분쟁지역에서 탁월한 협상 능력을 발휘했던 그는 한국인들에게도 한국문화를 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외교관으로 각인돼있다.
 
지난 2004년 9월 주한 미 대사로 부임한 그는 주한 미 대사 최초로 광주 5·18 묘역을 참배했다. 그 일을 계기로 당시 ‘여중생 장갑차 사망 사건’으로 고조됐던 반미감정도 차차 사그라들었다. 특히 그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종횡무진으로 활약했다.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북핵 6자 회담(남북한 및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측 대표를 수행하면서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9·19 공동성명의 주요 내용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관련국들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에너지를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참여정부 당시 북핵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한반도 주변 열강의 외교적 승리였고, 이를 주도 한 이가 바로 '슈퍼파워' 미국의 힐 전 대사 였다.
 
그 이후 미국 부시 정부에서는 매파 외교관들이 득세했고, 북한이 다시 핵 개발에 나서는 등 양측은 ‘강대강’ 대치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힐 전 대사도 우리 기억 속에서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하지만 필자는 최근에 ‘크리스토퍼 힐’ 이라는 이름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에서 보고 깜짝 놀랐다. 처음에 힐 이라는 이름이 동명이인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다. 온 나라를 떠들썩케 하고 대통령 까지 파면시켰던 ‘국정농단 사건’에서 그가 대표적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대리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등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지원을 위해 안종범 경제수석에 지시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하여금 엘리엇의 대리인인 힐 전 주미 대사와 면담시 엘리엇에 대한 (정부의) 제재 조치에 관해 설명하도록 했으며, 이후 금융위에 설치된 증권선물위원회는 엘리엇의 (삼성물산) 5% 보유 주식 보고의무 위반사실을 검찰에 통보했다.
 
이를 보면 힐은 삼성의 합병 관련해 엘리엇의 로비활동을 했으며, 정부 관계자와도 만나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지한파인 힐은 대사로 재직하면서 한국 정부와 재계 인사들과 쌓은 인맥을 활용해 엘리엇의 이익을 위해 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삼성전자를 뒤흔들면서 일반 투자자 이상의 이익을 챙겼다. 엘리엇은 결국 삼성전자로부터 자사주 소각이라는 조치를 이끌어냈으며. 이에 따라 삼성전자 주가는 상승했고, 그 차익을 고스란히 챙겼다.
 
물론 힐 전 대사가 이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다는 얘기는 아니다. 더구나 미국에서는 로비스트로 활동을 하는 것이 우리와 달리 합법이다. 하지만 미국의 거물급 인사들이 자기가 속한 펀드나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정부 고위 관리들을 만나서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힐과 함께 우리에게 친근한 기억으로 남은 미국 대사가 있다. 바로 마크 리퍼트 전 대사다. 최근에 그가 미국의 대표적인 방위산업체인 보잉의 부사장으로 영입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도 다시 한국을 방문할 때는 보잉으로부터 모정의 임무를 부여받고 오지 않을까. 
 
권순철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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