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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비뚤어진 청문회를 폐지하자
2017-06-15 11:07:55 2017-06-15 12:18:00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중의 주목을 받으면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떠오른 계기는 5공 청문회였다. 권력자들의 비리와 답변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언변은 보는 이들의 갈채를 끌어내기에 충분했고, 정치가로서의 자질을 부각시켰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지 국회의원들은 청문회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중의 영웅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엄습하면서, 공술인(公述人)의 말을 불신하고 비틀고 후벼 파는 솜씨들이 난무한다. 고관대작들을 심사하는 국회 청문회를 보면서 여러 생각들이 뇌리를 맴돈다. 왜 국회의원 출신 후보자들의 티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우리나라 청문회는 과거의 비리를 심판하고 조롱하는 자리인가, 국정을 이끌 능력을 검증하는 자리인가. 아무리 봐도 후자는 아닌 것 같다. 신문(訊問)하는 쪽이나 신문을 받는 쪽 모두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와 "어떻게 하겠다"는 문답보다는 청문회의 단골 메뉴인 위장전입, 탈세, 논문표절, 또는 병역기피를 범했느니 말았느니, 또 투기, 다운계약, 성희롱, 음주운전을 저질렀느니 말았느니를 놓고 설전이 오간다. 폭로와 비아냥은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민망스럽다. 청문회가 공직 후보자의 비전과 정책수행 능력을 검증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통령과 여당을 견제하고 청문회에 선 당사자를 망신시키는 자리로 전락했다. 청문이 과거 회고적이라면, 청문을 통해 미래 국정을 이끌어나갈 인재를 가려낼 수도 없다.
 
물론 비리의 온상 같은 일부 후보자들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청문회장에서 제기된 비판과 폭로는 대체로 수긍이 간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후보자들의 작태들을 보면, 인물 좋고 유능해 보여도 국민에 봉사할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 자기를 뽑아 준 주군에만 헌신할 것처럼 보인다. 과거 어떤 후보자는 '뒤로 호박씨를 까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탈법과 편법이 일상화됐고,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기 일쑤였다. 어떤 이는 국민을 개·돼지 취급했던 전 정부의 어떤 공직자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일부 답변은 청문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좌절감과 자괴감을 들게 만든다. 심지어 "저러니까 출세했나. 나는 뭐 하고 살았지”라는 회의가 들 정도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청문회를 잘못 알고 있다. 청문회는 꾸짖고 나무라는 자리가 아니다. 미국에서 발달한 청문(Hearing)이란 자유와 권리를 침해당했거나, 당할 우려가 있는 이해관계자에게 적극적인 소명의 기회를 주는 절차다. 미국에서 판례를 통해 발달한 '정당한 법의 절차(Due process of law)'는 법에서 정한 절차를 형식적으로만 따르는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자 당사자가 청문회에 출석해 질문을 받고 자기의 입장을 진술하는 과정도 포함한다. 재판관이나 행정관이 이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헌법을 위배했다고 인정돼 그의 판결 행위가 무효로 된다. 재판상의 심리(Hearing)도 청문회와 본질은 같다. 법정에서 주장과 해명의 기회를 주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소송 당사자들의 진술을 들어주는 반면 국회에서는 공직 후보자를 호통치고 꾸짖는다.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의원들에게 후보자를 호통칠 권능을 주지 않았다.
 
모든 제도는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청문도 그렇다. 청문회 대상이 된 공직 후보자는 국회의원이 뽑거나 임명하는 게 아니다. 임명직은 임명권자의 권능과 신뢰에 기초한다. 로마법은 "당신이 신뢰를 준 곳에서 당신의 신뢰를 구하라"고 했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최고 임명권자를 뽑았고 그를 믿는다면, 임명권자가 임명한 사람도 현행범이 아닌 이상 믿어야 한다. 임명권자나 국민이 미처 몰랐던 '사실(Fact)'이 청문회를 통해 알려지겠지만, 그 '사실'을 빌미로 공직 임명을 반대하는 것은 청문회의 본질에 어긋난다. 청문은 미래와 능력을 검증하는 일이지, 임명의 가부를 정하는 일이 아니다. 후보자가 얄밉다면 "정말 얄밉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선거전에서 회자되던 대선 후보들의 비아냥거림이 청문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청문의 예의를 잃지 말아야 한다.
 
내각제도 아닌 나라에서 국회의원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것처럼, 내각제도 아닌데 국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장관급 인사를 임명하지 못한다는 것도 헌법 원리와 맞지 않는다. 출처도 유래도 불분명한 왜곡된 청문회 제도는 복수의 혈전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청문회는 연정이나 협치를 실천하지 않는 데 대한 응징의 수단이 아니다. 우리 측 인사가 저 자리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을 찍어내는 절차도 아니다. 비뚤어진 청문회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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