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대통령 물 먹이기? 인사 물꼬부터 터야
2017-06-28 06:00:00 2017-06-28 06:00:00
"잘해도 너무 잘한다"며 이례적인 칭찬을 아끼지 않던 야권에서 짧은 허니문을 끝내고 대통령과 척을 지기 시작했다. 후보 시절 내세웠던 5대 인사배제 원칙에 맞지 않은 후보자를 지명해놓고 야권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하면서 무시했다는 이유에서다. 인사가 꼬이기 시작하니 결국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나 추경은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특히 추경은 자유 한국당의 ‘묻지마 보이콧’으로 역대 최장기 ‘표류’가 계속되고 있다. 결국 일자리 추경을 기다리는 국민들의 여론은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가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내각이 우선 구성되어야 한다. 지난해 12월9일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기까지 5개월이 소요되었고 그동안 우리 국민은 하루 빨리 정국이 안정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만을 고대해왔다. 올 5월9일 드디어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취임식에서 강하고 정열적인 당선 소감을 발표했을 때만해도 이렇게까지 내각 구성이 늦어질 줄은 몰랐다. 당장이라도 멈추었던 대한민국의 시계가 움직이고, 장관 인사가 마무리 되고 추경이 통과되어 실업률이 급감할 것처럼 흥분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17개 부처 중 15개 부처의 장관 인선이 발표되고, 부처 차관 중 산업자원통상 2차관만 미정인 상태에서 6명의 장관만 임명되었을 뿐, 내각 구성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작금의 상황이 대통령을 상대로 기선을 제압해보려는 야당의 무조건적 발목잡기라고 평가하기에는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현재까지 청와대가 발표한 후보군들이 대통령 스스로 내세운 인사원칙을 무사통과할 수 있을 만큼 클리어하지 못한 상황에서 야당에게만 대승적 차원에서 무조건 협치를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지난 25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 등을 소위 ‘부적격 신 3종세트’로 명명하고 해당 상임위 소속 의원 명의로 이들 후보자들의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은 26일 이들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 철회를 할 경우 추가경정예산안 등 국회 현안 처리에 협력하겠다며 당근을 제시하기도 했다.
 
야권, 특히 자유한국당이 이런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익히 예상된 일이기도 했다. 다당 체제하에서 오히려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에게 밀려 제1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잃고 있다는 위기감과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7·3 전당대회’를 위해 여당과 청와대의 기선을 제압하고 향후 정국운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계산임을 누구라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너무도 분명히 예상되는 반대를 넘어설 수 있는 현명하고 전략적인 문제 해결 대비책을 민주당이 왜 미리 미리 준비하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나마 여당에 호의적일 수 있는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역시 각 당이 차지하는 애매한 스탠스 때문에 쉽사리 대통령에게 협조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과의 차이점을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지율 정체에 몸살을 앓고 있고, 아울러 본인들이 지향하는 ‘진짜 보수’가 무엇인지 그들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본 뿌리가 같다는 태생적 한계와 지난해 일으킨 총선 돌풍이 결국은 호남민심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는 본질적 특성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협치를 강요받고 있는 국민의당 역시 상황은 녹록치 않다. 여당과 청와대에 협조하면 자유한국당의 존재감만 부각시켜주는 꼴이 되고, 자유한국당과 같은 노선을 취하자니 협치를 요구하는 국민의 여론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강경화 외무부장관에 대한 임명을 감행함으로써 엉뚱하게 그 불똥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게 떨어졌고, 국민들의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부실 인사검증 논란을 애써 외면하며 위태롭게 나아간 대통령의 추가 인선 역시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낙마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 부적격 3종 세트라는 오명까지 듣고 있는 세 명의 후보자들을 청와대가 그대로 안고 간다면 결연한 의지로 버티고 있는 야당을 설득시키기는 더 힘들어질 것 같다. 더 이상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여야 모두 무의미한 기싸움은 그만두고 진정한 협치를 위한 힘찬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이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