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해갈을 기원하며
입력 : 2017-06-30 11:29:09 수정 : 2017-06-30 11:29:09
“장맛비 내려/ 두루미의 다리가/ 짧아졌느냐”
 
집 앞에 펼쳐진 중랑천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일본의 하이쿠 시인이었던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의 하이쿠 한 수가 생각났다. 이 시는 장맛비로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서 하천에 머무는 두루미의 다리가 짧아 보이는 모습을 읊은 것이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인간의 시각을 조류의 이미지를 불러와 풀어낸 명구로 읽히는 작품이다.
 
야속하게도 최근 필자가 바라보는 중랑천의 경치에는 가끔씩 찾아와 머물다 가는 두루미의 다리가 길게 보이는 날뿐이었다. 지금이 장마철임을 감안하면 장맛비는 슬쩍 중랑천에 몸만 적시고 가는 수준이었다. 생각해보면, 중랑천에는 지난겨울부터 올 봄을 거쳐 현재까지 줄곧 가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가뭄을 겪고 있는 것이 어디 중랑천뿐이겠는가. 온 나라의 산하가 가뭄으로 신음 중이다. 이에 최근, 경북 의성군 건설도시과 직원들이 극심한 가뭄을 이기기 위해 금성산행을 하며 기우제를 올렸으며, 충남 청양군 의회도 기우제를 올리는 등, 단비를 기원하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기우제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전국의 사찰과 명산에서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여는 등, 하늘에 단비를 구애하는 애절함이 계속되고 있다.
 
역시 우리 조상들의 옛 문헌에도 가뭄을 극복하기 위한 사례들을 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기우제가 음력 4월과 7월 사이에 연중행사처럼 열렸다고 적고 있는데, 그 횟수가 무려 1천 447회나 된다고 하니 놀랍다. 이 시기에는 가뭄을 음양의 조화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자연재해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양기(陽氣)를 억제하고 음기(陰氣)를 불러들이기 위해, 남대문을 닫고 북문인 숙정문을 열어 비가 오기를 빌었다고 한다.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왕이 직접 종묘나 사직단에 나가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니 비를 염원하는 마음을 충분히 읽고도 남는다.
 
그래서일까. 전통적인 우리의 기우 행사에서는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강조되었다. 경북 경주에서는 푸른 버들가지 고깔을 쓴 수십 명의 무당이 젖가슴과 하체가 보일 정도의 모습으로, 저고리 깃과 치맛자락을 드러냈다 감추고 하는 행위를 반복하며 음란한 춤을 추었다. 또한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한반도 남쪽 지역에서는 여인들이 산 정상에 올라가 일제히 오줌을 누면서 비를 갈구했다. 이 역시 음양 사상에서 비롯된 것. 양이 지나쳐서 가뭄이 생기기 때문에, 음인 여인들이 단체로 춤을 추거나 방뇨를 하면 음양의 기운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비가 내린다는 믿음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또한 가뭄의 기록과 관련하여, 조선의 3대 임금이었던 태종 때에는 재위 18년간 기우제 기록이 없는 해는 태종 3년(1403) 단 한 해뿐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나머지 열일곱 해 동안은 매년 두세 번씩, 1416년 한 해에는 무려 아홉 번의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까지 보인다. 실록은 또한 태종이 즉위한 후, 극심한 가뭄으로 모든 곡식이 말라 죽자, 전국의 민초들이 ‘유리걸식(流離乞食)’하며 길가에 굶어 죽은 시체가 넘쳐났다고 적고 있다. 그 참혹함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유리걸식’ 이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는다는 뜻이다.
 
26대 임금이었던 고종 때에도 무려 186회의 기우제를 올렸다는 문장이 눈에 띈다. 고종 19년1882년 5월 4일에, “삼각산과 목멱산에서 여섯 번째 기우제를 지내다.” 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농경사회였던 그 당시 한반도에는 가뭄이 잦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며, 그만큼 비를 갈구했던 우리 조상들의 애절한 마음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이웃 나라 중국도 가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2년 전인 2015년 6월, 저장성 닝보시와 레이저우시에 인공 강우탄을 곡사포 등으로 발사하여, 각각 59.2mm와 29.2mm의 비를 얻었다고 하는 뉴스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지구 온난화로 야기되는 ‘이상 기후’는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른다. 아무리 과학 기술과 관개시설의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하늘의 일을 인간의 의지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찌하랴. 하늘의 뜻에 거슬리는 행동을 삼가하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노력을 할 수밖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하지 않겠는가. 계속해서 해갈의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자.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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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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