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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작사가란 ‘상상 휴게실’을 만들어 주는 사람”
데뷔 30주년 목전에 둔 윤종신 첫 산문집…노래로 해온 자신과 세월 이야기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윤종신 지음|문학동네 펴냄
2018-09-06 18:00:00 2018-09-06 1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어디쯤에 머무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 걷다 보면 누가 말해줄 것 같아’ ‘이 거리가 익숙했던/우리 발걸음이 나란했던/ 그리운 날들/ 오늘밤 나를 찾아온다’
 
성시경의 ‘거리에서’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가슴 속에서 ‘내면화 작업’이 일어난다. 감미로운 멜로디를 타고 추억이 깃든 자신 만의 길이 생각 나고, 달콤했지만 아릿한 사랑이 어른거린다. 화자 1인칭의 시점에서 ‘너’를 부르는 노래는 결국 나를 넘어 상상을 자극하는 우리의 이야기로 번진다.
 
이 곡을 만든 이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작사가를 사람들에게 ‘상상 휴게실’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상에 필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가이드랄까요.”
 
데뷔 30주년을 목전에 둔 싱어송라이터 윤종신이 첫 산문집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를 냈다. ‘노래로 이야기를 해온’ 자신과 세월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과 이별, 청춘과 꿈, 가족과 일상, 삶과 죽음 등 곡을 만들면서 했던 생각 뭉치들이 책 한 권에 오롯이 담겼다.
 
“저는 좋은 가사란 구체적이면서도 구체적이지 않은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요?”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가사를 윤종신은 추구한다. 동시에 사람마다 각기 다른 그림을 상상할 수 있게 적당한 여백을 남겨둔다. 가사는 어느새 타인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내 이야기로 확장된다.
 
‘거리에서’를 듣는 누군가는 신촌의 골목길을, 또 누군가는 압구정동의 대로변을 떠올린다. 공간 뿐 아니라 길에 얽힌 시간과 감정, 사람에 관한 상념도 각양 각색이 된다. 윤종신은 “사람들에게 ‘노래’라는 상상의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자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해볼 수 있게 돕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정리한다. “듣는 이가 자신 만의 상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휴게실’을 열어주는 사람”이 윤종신식 작사법의 요체다.
 
어린 시절 들었던 박학기, 조동익, 장필순, 김현철은 지금 그의 음악적 감수성을 만들어 준 토대였다. 원주에 있는 대학교를 하루 왕복 5시간 가까이 오가는 동안 그는 이 음악들을 들으며 사색에 잠기곤 했다고 회상한다. 눈 앞에 펼쳐지는 이런 저런 장면을 음악과 결합하고 감각하던 ‘놀이’가 ‘노래로 이야기하는’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그래서 그는 작사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어폰을 끼고 무작정 걷거나 버스나 기차를 타는 ‘작사 여행’을 권하기도 한다.
 
프로페셔널한 작사가로 스스로를 다듬을 수 있던 건 박주연, 신해철, 정석원 덕분이었다. ‘가사’란 창작물로 세상과 소통한 이들은 단순히 일차원적 감정 표현밖에 몰랐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박주연 누나에게선 ‘가사는 이야기’라는 중요한 개념을 배웠습니다. (중략) ‘몰랐었어. 니가 그렇게 예쁜 줄(윤종신 대표곡 ‘너의 결혼식’의 가사)’이라는 첫 줄을 보자마자 ‘와, 진짜 이 누나가 소설을 쓰는구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나요.” “신해철 형으로부터는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고 정석원 형으로부터는 발상의 전환을 배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시작부터 대한민국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과 어울렸으니까요.”
 
사랑과 이별 외에 나이와 청춘, 꿈, 가족 등 다양한 주제를 가사로 쓰지만 ‘프로파간다’적 성격은 냉철히 배제한다. 자신의 경험론에 근거해서 내리는 직접적인 주장이나 설득, 선동은 결코 ‘좋은 가사’가 될 수 없다는 신념에서다. 40대 초반에 발표한 곡 ‘나이’를 쓸 때도 “눈에 보이는 현상과 마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솔직히 회고한다.
 
그는 지난해 음원차트를 휩쓴 ‘좋니’ 이후 “괜한 체력 낭비 말고 ‘그런 노래’를 계속 만들라”는 주위의 채근에 단호히 ‘노(NO)’ 한다. ‘세로 줄’ 세우기에 여념 없는 음원차트의 구조적 모순을 짚고 “창작물은 가로로 나란히 놓아야 한다”고도 역설한다.
 
해외에서 1년간 안식년을 갖고 ‘빵집 주인 이사벨’, ‘옆집 총각 알렉한드로’ 같은 특이한 곡을 만들겠다거나 ‘크로스 오버’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계획에선 “안주하지 않고 떠돌고 싶다”는 말의 의미도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계절’이란 말도 좋아하고 가사로도 많이 인용한다. 끝없이 반복된다는 것, 속절없이 지나갔다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것, 끝난 것 같지만 결코 끝난 게 아니라는 것 등을 늘 생각한다. 순환하는 계절처럼 자신에 대한 결론이 이 책으로 영원히 박제되기도 원치 않는다.
 
“윤종신은 이런 사람이구나, 라고 정리해주시기보다는 윤종신이 앞으로 이렇게 변하겠구나, 하고 추측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활자로 담아 내지 못한, 활자의 틈으로만 감지되는 앞으로의 변화를 살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윤종신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윤종신 첫 산문집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 사진/문학동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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