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거대 자본이 한국 드라마 시장에 들어오면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국내 제작사는 글로벌 OTT가 끌어올린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내 방송사는 방송 광고 시장이 축소돼 드라마 편성을 줄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탑 배우들의 출연료는 여전히 글로벌 OTT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지며 고공행진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제작 자체가 줄면서 조연, 단역 배우들은 출연할 작품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제작사·방송사, 높아진 출연료 부담 호소
27일 올해 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3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방송사와 제작사는 제작비 내역 중 단가를 하향 조정할 필요성 있는 항목으로 배우 출연료를 지적했습니다. 설문에 참여한 방송 3사는 100%가 출연료를, 제작사 8곳 중 87.5%(7곳)이 출연료 부담을 호소했습니다. 제작비 내역 항목은 기획료·출연료·작가료·제작진 인건비·장비 장소 임차료·미술비·진행비·기타입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 따르면 2019년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5~6억원입니다. 최근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15~30억원으로 크게 올랐습니다. 드라마에 많은 돈을 투자 하는 것으로 알려진 국내 방송사 SBS는 회당 15억원이 최대치입니다. 반면 넷플릭스 '경성크리처'는 회당 제작비가 35억원, '머니게임'은 회당 30억원, 디즈니플러스 '삼식이 삼촌'은 회당 40억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2', '경성크리처' 포스터.(사진=넷플릭스)
제작사 관계자는 "과거 회당 1억원 수준인 출연료가 최근 회당 4억원에서 최대 7~8억원까지 크게 상승했다"며 "글로벌 자본이 들어오면서 제작비가 높게 책정돼 제작이 되고 있고 그 중 비중을 가장 크게 차지하는 게 출연료"라고 전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출연자의 경우 10년 동안 출연해 받은 출연료보다 넷플릭스 한 작품에 출연한 출연료가 더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배우 이정재가 '오징어게임2' 회당 출연료로 13억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10회만 되도 130억원을 받는 것"이라며 "회당 제작비가 30억원이라고 하면 이정재 몸값으로만 절반의 제작비를 쓰는 것인데 10억원이 넘는 배우 출연료를 어느 중소 제작사가 감당하겠냐"고 전했습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는 수억원의 출연료를 주고 작품을 찍었지만 방송국이나 OTT의 편성을 받지 못한 드라마가 최소 30편이 넘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제작비에 대한 손실이 고스란히 제작사로 돌아가면서 스태프의 임금체불 신고 건수도 늘었는데요. 방송 스태프 임금체불 신고 건수는 2022년 120건, 2023년 192건으로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임금체불 신고 건수는 연간 평균치(74건)의 2.5배 수준입니다.
드라마 촬영 현장.(사진=뉴시스)
방송사 사정도 비슷합니다. 드라마 제작비가 상승했지만 광고 시장이 악화돼 광고비만으로 제작비를 충당할 수 없게 됐습니다. 방송사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 드라마 편성을 최소한으로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OTT가 들어오기 전 지상파, 케이블, 종편에서 방송된 주간 편성 작품이 30편이 넘었습니다. 현재는 13편으로 줄었습니다.
방송사 관계자는 "드라마가 방송사 대표 콘텐츠다 보니 포기할 수 없지만 제작비 부담이 돼 편성을 줄일 수 밖에 없다"며 "다른 방송사도 출연료 등 제작비 상승으로 인한 위기 의식을 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단역 배우 최저 시급도 못 받아
한국방송연기자 협회는 출연료 논란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협회 관계자는 "탑 배우 몸값이 올라가는 건 시장 경제 논리에 따른 것이다"며 "배우 몸값을 낮춘다고 하더라도 그 혜택이 조연·단역 배우에게 돌아가지 않고 자신(제작사)들의 수익으로 가져갈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탑 배우를 제외하면 조연 배우, 단역 배우들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게 협회의 입장입니다. 지난해 연기자 임금제도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조연의 경우 회당 평균 248만원, 단역 평균 88만원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마저도 드라마 제작 편수가 줄면서 조연 배우, 단역 배우들이 출연할 수 있는 작품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일부 단역 배우는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출연료를 받아 연기 외 경제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정책적으로 제작비를 제한하기는 현실상 어렵다"며 "다만 고비용 제작비에 대해 일부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완충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인천공항을 소재로 한 드라마 '여우각시별'의 촬영 모습.(사진=인천공항공사)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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