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확성기와 북한군 초소(사진=연합뉴스)
"여러분들의 애국충정을 다 이해하고, 법에도 이것을 막는 규정은 없다고 하지만 북한이 이것을 트집 잡고 남북관계의 경색 원인이라고 하는데 보다 큰 목적을 위해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여러분의 전단살포가 옳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는 어차피 북한을 안고 살아가야 하므로 여러분들의 대승적 고려가 있었으면 한다."
16년 전인 2008년 12월 5일, 당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를 만나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해달라고 설득했다. 박상학 대표는 "정부의 곤혹스러움을 감안해 당분간 중단하고 관망하겠다"며 설득을 받아들였다. (관련 기사:
"충정 이해하나 삐라 자제해달라"..."당분간 중단")
2024년 현재만큼은 아니지만, 2008년 말 한반도 상황도 몹시 심각했다. 그해 2월 이명박정부가 대북정책 '비핵·개방 3000'을 걸고 출범했으나 북한은 4월에 이를 공식 거부했고 7월에는 '고 박왕자씨 피격 사건'으로 금강산관광도 중단됐다. 북한은 10월에 대북전단 살포를 경고한 뒤 개성관광 전면 차단과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지구 남한 상주인원 및 차량에 대한 선별 추방에 돌입했다. 긴장 고조 국면을 냉각시키기 위해 집권당 대표가 직접 대북 전단 활동 인사들을 만나 설득한 것이다.
대북전단 문제는 보수를 내세운 이명박·박근혜정부에게도 적잖은 부담이었다. 통일부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박상학 대표를 고발하기도 했고, 2012년과 2015년 등에는 경찰이 대북전단 살포 단체들의 대북 접경지대 진입을 원천봉쇄, 전단 살포를 무산시켜 버렸다.
헌재도 전단살포 제한 당위성 인정했는데…정부는 자제요청도 안 해
윤석열정부는 이와는 전혀 다르게 대응하고 있다. 북한의 '오물 풍선'살포는 국가 차원의 행위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열하다. 하지만 이에 지난달 10일 박상학 대표 등 탈북민 단체들이 대북전단 30만 장을 살포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가 '대북전단 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내린 위헌 결정을 내세워 대북전단 살포단체들에 자제 요청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헌재가 처벌의 과잉을 문제 삼았을 뿐 전단 살포의 문제점과 제한의 당위성은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는 헌재 결정의 왜곡이다. 이명박·박근혜정부도 했던 대북전단 살포 자제 요청을 왜 이 정부는 하지 않은 것일까.
전단과 확성기 방송은 남북관계를 뒤흔들어왔다. 북한은 2014년에는 대북전단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해 그 총탄이 연천군 중면 면사무소에 총탄이 떨어지자 남북 간에 시차를 둔 총격전이 벌어졌다. 2015년에는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사건에 맞서 한국군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이 고사총과 직사화기로 사격했고 이에 155㎜ 자주포로 맞대응하면서 전면전 일보 직전까지 갔다. 급기야 2020년에는 북한 김정은 총비서의 부인을 겨냥한 외설적인 합성사진을 담은 전단 등을 이유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까지 폭파해 버렸다. (관련 기사:
북, 대북전단에 왜 발끈했나…"추잡한 리설주 합성사진에 분노")
삐라·오물 풍선에서 못 막으니 총알과 폭탄으로 이어진 것이다.
2020년 6월 17일 조선중앙TV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을 보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는 '오물 풍선'을 계기로 9
·19 남북군사합의 전체를 효력정지했다. '빈대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이보다 더 적합한 상황이 또 있을까.
"(2017년 5월 취임 이후) 최우선적으로 국방상황과 남북 간의 군사력 비교부터 먼저 보고하도록 했어요. 당시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재래식 전력 면에서는 우리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어요. 육해공 모든 분야에서. 다만 소형 잠수함이 북한이 조금 더 많이 있는 정도였어요." (문재인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 368쪽)
이런 압도적인 대북전력을 기반으로 2018년에 9·19 군사합의를 맺은 것이다.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는 현재 한국의 군사력을 전체 145개국 가운데 5위로, 북한은 36위로 평가한다. 남한의 국방비가 북한의 (국방비가 아니라) 예선 전체를 압도한 것도 이미 오래된 일이다.
동아일보도 "9·19 군사합의는 최소한의 안전핀…군사적 자제 선까지 완전히 풀어버린 것"
보수 언론 <동아일보>도 5일 자 사설에서 "9·19 합의는 북한의 무더기 위반과 우리 안보의 족쇄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 군사 충돌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판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조치로 남아있던 군사적 자제의 선까지 완전히 풀어버린 것"이라고 우려한다.
군은 대규모 기동훈련과 함께, 휴전선 인근과 서해(백령도, 연평도)포탄 실사격 훈련을 재개할 예정이다. 한국군이 훈련을 안 하고 포사격 능력이 떨어져서 안보가 불안해진 것인가?
북한의 '오물 풍선'이 떨어져 한국의 대표 공항 인천공항 이·착륙이 3차례 중단됐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창 꽃게잡이 중인 서해 연평도 어민은 "최근에 중국 어선이 안 보인다"며 북한의 도발 징후가 아닌지 근심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기본 책무인데, 이 정부는 왜 이렇게 할까?
북한에 대한 외부 정보유입이 필요하다고?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사실상 그러한 소위 정보 유입은 다른 방법으로 충분하게 되고 있다.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되고 있다"고 무지른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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