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떠나는 쪽방촌)②"일해서 돈 버느니 기초수급 받겠다"
공공일자리로 월 100만원대 소득…기초수급액도 월 100만원선
일해서 소득 잡히면 생계급여 못 받아…공공일자리 기간도 짧아
기초생활수급자격 유지하고자 자기 몸 일부러 다치게 만들기도
전문가들 "장기간 일할 일자리, 일할 동기 부여가 될 급여 필요"
2024-07-03 06:00:00 2024-07-03 06:00:00
[뉴스토마토 안창현·신태현·박창욱 기자] "나라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돈은 한 달에 100만원 남짓이에요. 그런데 공공일자리를 하게 되면 월급이 약 90만~110만원 정도 됩니다. 문제는 기초수급액이나 공공일자리 월급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기초생활수급자 입장에선 굳이 일을 할 필요성이 안 생기는 거죠."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 내 쪽방상담소에서 만난 A씨는 쪽방촌 거주자가 '탈쪽방'(쪽방촌을 벗어나는 일)을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거주자들의 상황과 선택을 고려하지 않는 일자리 정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A씨에 따르면, 쪽방촌 거주자 가운데 70%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입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영등포 쪽방촌 거주자가 416명 정도니까 기초생활수급자는 219명 이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기초생활수급자는 공공일자리나 기타 직업으로 돈을 벌어 소득이 잡히게 되면 각종 지원금이 줄거나 아예 못 받게 됩니다. 그렇다고 공공일자리를 통해 돈을 벌자니 기초수급액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쪽방 거주자 입장에선 밖에서 일해도 목돈을 만들기 힘드니 차라리 쪽방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지내며 기초수급액을 타려고 한다는 겁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정부, 기초생활수급자에 1인 기준 월 105만원 지급
 
기초생활수급자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거해 국가로부터 생계급여를 받는 사람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일정 비율 이하여야 하는데요. 올해의 경우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 222만8445원에서 32%, 즉 71만3102원 이하 소득이면 생계급여를 지원받을 수 있는 겁니다. 즉 1인 가구를 기준으로 소득이 아예 잡히지 않는다면, 정부로부터 매달 71만3102원을 수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1인 가구 기준 월 소득액이 106만9654원 이하에 해당하면 34만1000원의 주거급여도 지원됩니다.
 
정리하자면, 쪽방촌 거주자와 같은 상황에 처한 1인 가구를 기준으로 어떤 일자리나 소득이 완전히 없다고 가정할 경우 생계급여(71만3102원)와 주거급여(최대 34만1000원)를 합쳐 매월 105만4102원을 받는 겁니다.
 
서울시, 공공일자리 제공…쪽방촌 거주자엔 '계륵'
 
서울시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저소득층을 위해 공공일자리 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일자리의 형태는 청소·병동관리·급식보조 등 다양합니다. 근로자의 연령·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일자리를 주선해 줍니다. 공공일자리는 크게 전일제(8시간 근무)와 반일제(5~6시간 근무)로 나뉩니다. 전일제로 일하면 매월 250만원 정도, 반일제의 경우는 매월 84만~102만원을 수령합니다.(전일제·반일제 월급엔 식비 포함)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의 몸 상태가 기록된 서류.(사진=뉴스토마토)
 
그런데 쪽방촌 거주자들은 연령·건강 상태 등의 이유로 장시간 근무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로 반일제 근무를 선택하는 겁니다. 문제는 공공일자리로 버는 돈과 기초수급액을 비교하면 반일제 근무가 '계륵'이 된다는 데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쪽방촌 거주자들은 매월 105만4102원 기초수급액을 수령합니다. 
 
이때 반일제 근무를 하면 월 84만~102만원을 받습니다. 단, 생계급여기준(71만3102원)을 넘었기 때문에 생계급여는 못 받습니다. 주거급여(34만1000원)만 수령이 가능합니다. 결국 반일제를 택한 쪽방촌 거주자는 5~6시간 일하는 대가로 135만원 정도를 받게 됩니다. 기초수급액 105만원보다 30만원 정도 많은 겁니다.
 
A씨는 "영등포 쪽방촌만 해도 기초수급자가 최소 70%인데, 이 분들은 굳이 일을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서 "가만히 있어도 100만원이 들어오는데, 겨우 30만원을 더 벌겠다고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른 문제점도 있습니다. A씨에 따르면, 대다수 공공일자리가 4~6개월간 진행되는 등 기간이 짧아 근로의 불안정성이 높다는 겁니다. 특히 공공일자리가 만료돼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한번 소득이 생긴 걸로 집계되기 때문에 다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신청하면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심지어 쪽방촌 거주자 중엔 기초생활수급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일할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증명하고자 몸을 더 다치게 만들거나 건강 상태를 일부러 악화시키는 일까지 있다고 합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전문가들 "장기 공공일자리 제공하고 급여 높여야"
 
전문가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계약기간이 보장된 일자리를 제공하고, 근로에 동기를 부여를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급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돈의동 쪽방상담소에서 일하는 B씨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예산이 빠듯한 건 알지만, 공공일자리로 버는 돈과 기초수급액이 적어도 50만원 이상은 차이가 나도록 해야 일할 동기가 생길 것"이라며 "목돈이 생겨야 탈쪽방도 가능하리라고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안창현·신태현·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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