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원 기자] 코로나19가 에너지업계 세대교체에 불을 붙이고 있다. 업계는 통상 수십 년 뒤로 전망했던 '탈석유 시대'가 코로나19로 예상보다 빠르게 가까워졌다는 평가다. 정유사들은 △수요 침체 △저유가 △마진 하락 삼중고로 올 상반기 어닝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배터리 업체들은 그동안의 공격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 3분기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정유사 대부분은 흑자 전환에 실패했다. 아직 실적 발표를 하지 않은 GS칼텍스 역시 흑자 전환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이다. 이들 정유 4사는 올 상반기 5조1000억원대의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 원유 수요가 급락하고 정유사 주요 수익 지표인 복합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 아래로 떨어진 탓이다.
코로나19가 에너지업계 세대교체에 불을 붙였다. 업계는 통상 수십 년 뒤로 전망했던 '탈석유 시대'가 코로나19로 예상보다 빨리 가까워졌다는 평가다. 사진은 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펌프잭' 모습. 사진/뉴시스
국제유가 회복세가 더뎌지며 실적 개선은 더욱 힘들었다. 지난 3월 코로나19 발 원유 수요 침체와 산유국들의 증산이 겹쳐 사상 초유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국제유가는 11월 첫째 주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평균 39달러 수준까지 회복했다. 다만 이는 아직 평년 수준을 훨씬 밑돈다. 지난해와 2018년 같은 기간 두바이유는 각각 배럴당 약 60달러, 71달러를 기록했다. 유가는 정유사가 보유 중인 원유 재고 가치에 영향을 미쳐 급락 시 재고 평가 손해로 이어진다.
구체적으로 올 3분기 SK이노베이션은 전체 실적으로 28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에쓰오일은 9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까지 정유 4사 중 3분기에 유일하게 흑자를 낸 현대오일뱅크는 35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이마저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7.7% 감소한 수준이다. 이들 정유사는 모두 전 분기보다 손실 폭을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3분기부터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이란 증권업계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반면 배터리 업계는수년간 투자 대비 수익을 내지 못하는 '돈 먹는 하마' 꼬리표를 벗어던졌다. LG화학은 3분기 매출액 7조5073억원, 영업이익 9021억원으로 각각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삼성SDI도 같은 기간 분기 최고 매출인 3조872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61.1% 증가한 2674억원을 냈다. 국내 배터리 3사 중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사업은 흑자 전환엔 실패했지만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다. SK이노베이션의 3분기 배터리부문 매출은 지난해보다 2.5배 늘어난 4860억원을 기록했다.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도 국내 배터리 3사의 성장세를 증명하고 있다. 올 1~8월 LG화학(24.6%), 삼성SDI(6.3%), SK이노베이션(4.2%)의 점유율 총합은 35.1%로, 지난해 동기(16.2%)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했다. LG화학은 1위를 지켰고,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각각 4·6위에 올랐다. 이들 배터리사가 제품을 공급하는 고객사의 전기차 판매가 늘면서 수혜를 입은 덕이다.
아울러 최근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최종 당선되면서 정유업계와 배터리 업계의 희비는 더욱 극명하게 갈릴 전망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앞서 "나는 청정에너지에 투자할 것이며, 석유회사에 보조금을 주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장기적으로 원유 수요 자체가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인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은 성장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미·중 무역 분쟁이 지속하는 가운데 중국 배터리사들의 미국 진출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승원 기자 cswon8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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