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콘서트를 허하라
2021-04-19 06:00:00 2021-04-19 06:00:00
코로나19 발생 이후 1년이 훌쩍 넘었다. 그 이전이 먼 과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음악술집에 가거나, 집에서 공연 실황을 보며 술을 마실 때 그렇다. 관객이 가득 들어찬 공연장에서 사람들은 환희에 가득한 표정으로 소리지르고 합창한다. 관객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흥분도는 올라간다. 콘서트 문화의 상징과도 같았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대형 콘서트의 역사는 60년만에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야 했다. 환희와 열광이란 단어도 함께 멈췄다. 당연했던 게 아득해졌다.
 
콘서트가 멈추며 시련은 시작됐다. 지난해 신천지발 1차 대유행 직후 모든 콘서트가 취소됐다. 내한 공연은 진작에 연기(라 쓰고 취소라 읽자)됐고 국내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20여년간 거의 매주 공연을 보며 살았는데 코로나 이후 많아야 2-3개의 공연을 봤다. 그나마 있는 공연도 마스크를 쓰고 보려니 영 내키지 않았다. 아니, 사람이 좀 모인 곳을 가기가 찝찝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콘서트는 그렇게 나에게서, 그리고 우리에게서 휩쓸려 갔다. 한국에 페스티벌이란 단어가 등장한 이래, 한 개의 페스티벌도 열리지 않은 첫 해로 기록됐다.
 
그 시간 동안, 콘서트 업계 종사자들은 죄인 아닌 죄인의 삶을 살아야 했다. 방역이라는 전쟁터에서 공연장은 금기의 땅처럼 여겨졌다. 룸살롱, 부킹포차와 동급이 된 기분이었다. 비싼 임대료를 내고 휴업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무브홀, 브이홀 같은 라이브클럽들이 하나 둘 씩 소리소문없이 문을 닫았다. 당장의 클럽 공연 조차 하지 못하는 뮤지션들은 물류센터 알바를 전전했다. 평소 공연소식만 올라오던 SNS에 정부를 성토하는 글이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안타까운 부고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공연장이, 콘서트가 그렇게 위험한 곳이었나? 결론적으로 그렇지 않다.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쏟아질 때 공연장에서는 단 한 건의 감염도 없었다. 독일, 스페인에서는 일찌감치 공연을 재개하기 위해 학계와 지자체가 실험을 했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킬 경우 안전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한국은? 코로나 19 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일 때 조차 금지와 차별의 나날이 계속됐다. 클래식, 뮤지컬이 공연을 재개했지만 대중음악은 여전히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았다. 지원에서도 소외됐고 항의에도 무응답을 받아야했다. 이 와중에 불을 붙인 건 오히려 공연 산업 생존을 위해 정부가 내세운 대책이었다. 온라인 공연장 신설이 그것이다. 아무도 반기지 않았다. 대중음악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 탁상행정의 소산인 대책에 결국 음악인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음악레이블산업협회는 여론조사 및 연구를 통해 콘서트가 재개될 당위성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고사직전인 라이브 클럽을 지키기 위해, 관계자와 팬들이 모여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라는 대규모 온라인 페스티벌을 열었다. 그 와중에 마포구청 담당자의 “공연은 칠순잔치에서나 하는 것”이라는 말로 인해, 아직도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라이브클럽의 현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어지는 자구책의 정점은 지난 12일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음공협)의 발족일 것이다. 그동안 레이블, 음악인의 단체는 있었지만 공연산업은 다양한 직능으로 구성된 탓에 대표할만한 조직이 없었다. 가수와 레이블은 대중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무대를 세우고 그 뒤에서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을 서포트하는 게 그들의 본능인 탓에 뭉칠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역별, 직능별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상충하기도 하니 협회라는 이름으로 목소리를 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음공협의 출사표는 원론적이고 투박하기까지 하다. 미디어 및 대중과의 스킨십에 서툰 티가 보인다. 어쩌면 그렇기에 콘서트업계가 처한 위기감과 절박함이 느껴진다. K-방역이 사회와 정권의 우선과제가 되면서 버텨온 1년을 또 다시 반복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나선 콘서트 업계의 움직임에서 짠한 감정마저 든다. 
 
한국이 코로나19에 비교적 잘 대응하면서 국뽕에 취했을 때는, 고난의 행군이 곧 끝나리라 믿었다. 백신 도입 뉴스가 발표됐을 때는 2021년 여름 즈음이면 그래도 제한적으로나마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을 거라 낙관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지나친 장밋빛 미래였다. 일상 속의 방역전쟁이 언제 끝날지 미루어 짐작도 못하겠다. 이왕 장기전이라면 숨통을 허하라. 실제 전쟁이 벌어져도 위문 공연이 있는 법 아닌가. 방역 수칙 하의 콘서트는 바이러스 전쟁에서 우리의 숨통을 좀 트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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