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신태현 기자] 마음 편히 집 나서기 무서운 세상이다. 일면식 없는 사람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묻지마 범죄' 수준이 도를 넘고 있다. 가족 간 패륜범죄나 혐오범죄와는 다르지만, 이유나 동기가 없다는 점에서 위험성과 심각성이 더 크다. 뉴스토마토는 다층적·심층적 해부로 '묻지마 범죄'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예방의 필요성을 공론화 하고자 한다.<편집자주>
2019년 4월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이웃에게 흉기를 무차별로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한 안인득.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그는 편집형 정신분열병(조현병) 환자로 밝혀졌다. 안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2심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형이 확정됐다.
2018년 10월 서울 강서구 소재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살해한 김성수도 1·2심에서 징역 30년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대법원에 상고취하서를 내 형이 확정됐다. 그는 자신의 자리가 더럽다며 피해자를 수차례 불렀고,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등 말다툼 끝에 집에서 흉기를 가져와 범행을 저질렀다. 1심 재판부는 "사소한 문제로 인한 말다툼 외에 특별한 범행 동기를 찾기 어려운 점에 비춰보면 피고인의 생명경시 태도가 상당히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폭력과 학교 폭력 등으로 인해 오랫동안 만성적 우울감과 불안 등에 시달려 온 점 등 정신적 문제도 양형에 반영했다.
정신적 질환자 중 잘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범행을 무차별 범죄를 저지르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묻지마 범죄'는 정신 질환자들의 범죄로만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과연 그럴까.
표적 없는 현실불만·정신장애·만성분노
'묻지마 범죄'는 처음부터 범행 대상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증오 범죄나 스토킹과는 성격이 다르다. 증오 범죄는 인종이나 종교, 성적 취향과 계층 등에 대한 편견과 증오, 혐오감을 폭력으로 표출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3월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사건은 스토킹을 통한 계획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묻지마 범죄'와 다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2014년에 발표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는 세 가지 특성을 가진다. △범죄 동기를 모르거나 뚜렷하지 않고 △아는 사람 대상이 아닌 점 △폭력을 휘두르는 점으로 요약된다. 이른바 '눈 가린 자객'의 습격이다.
유형별로는 △현실불만형과 △정신장애형 △만성분노형으로 나뉜다. 현실불만형은 사회에 불만이 있거나 처지를 비관해 막연한 적대감을 가진 경우다. 정신장애형은 주로 조현병 같은 정신장애가 있거나 약물·본드 등 환각물질 흡입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이다. 만성분노형은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의도를 잘못 해석하거나 분풀이로, 또는 특별한 이유 없이 재미로 범죄를 저지른다. 주폭이나 상습 폭력범도 여기 해당한다. 주취 상태이거나 환각제를 사용한 상태일 때가 많다.
수사기관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검찰청은 지난 2015년 묻지마 범죄를 '동기없는 범죄'로 규정하고 현실불만형·정신질환형·알코올남용형으로 유형을 나눴다.
지난 2019년 4월 17일 경남 진주시 한 아파트에서 방화 및 흉기난동 사건을 벌인 안인득(42)씨가 같은달 19일 오후 치료를 받기 위해 진주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병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경남지방경찰청은 지난 18일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안 씨의 이름·나이· 얼굴 등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사진/뉴시스
'묻지마 범죄' 재범률 높아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비면식'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연구원은 슈퍼마켓 주인과 조현병 때문에 눈에 띄는 손님 등 서로 얼굴을 알아도 상호작용 없는 경우, 목표가 명확한 범행 도중 주변 불특정인을 해하는 경우 등도 비면식 관계로 정의했다. 사람의 신체가 아닌 불특정 기물을 무차별 파괴하는 경우도 묻지마 범죄에 포함된다.
통상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동기도 묻지마 범죄의 특징이다. 조현병 환자의 범행 동기는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처지 비관이나 사회에 대한 분노가 불특정인을 향하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정신장애 관련 강력범죄는 해마다 늘고 있다. 대검과 법무연수원에 따르면, 전체 정신장애 범죄자 수는 지난 2011년 5379명에서 2019년 7818명으로 늘었다. 전과자의 강력범죄 비율도 높다. 대검의 '2020 범죄분석'에 따르면 살인 등 흉악범죄를 저지른 정신장애 범죄자 705명 중 전과자는 369명(52.3%)으로 과반을 넘었다. 상해 등 폭력범죄의 경우도 1987명 중 전과자 1220명(61.4%)으로 압도적이었다.
'묻지마 범죄 재범률도 높다. 현재 검찰은 통계를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묻지마범죄 관련 현황을 별도 작성·관리하지 않고 있다. 대신 연구원이 2012년 대검에 묻지마 범죄로 보고된 수사재판기록 57건에서 조건에 맞는 범죄자 48명을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재범자 비율이 75%(36명)로 높았다. 평균 전과 수는 6건이었다. 전과 범죄는 주로 폭력·상해(91.7%·복수응답)였다. 이들의 죄명은 상해(47.9%)가 가장 많고 살인미수(25%)가 뒤를 이었다. 살인은 4.2%였다.
PC방 아르바이트생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 김성수가 지난 2018년 11월 21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성수는 이날 "동생도 잘못한 부분에 벌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유형과 동기 다양...복지 등 사회적 처방 필요
범행 동기는 복합적이다. 환각·망상(26.5%·복수응답), 재미·자기과시·이유없음(25%), 분풀이·스트레스 해소(23.5%) 순이었다.
'묻지마 범죄자' 중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적 있는 사람은 절반이 넘는 58.3%(28명)로 나타났다. 이들 중 조현병 진단을 받은 경우가 39.3%(11명), 알콜중독 10.7%(3명)였다.
범죄자 생활 수준이 대체로 낮은 경향도 눈길을 끈다. 대검에 따르면 2019년 정신장애범죄자 7818명 중 생활 정도가 '하류'에 속한 사람은 6005명(76.8%)에 달했다. 반면 중류 1736명, 상류는 51명에 불과했다.
전체 범죄자로 시야를 넓혀도 생활 정도가 하류인 경우는 전체 175만4808명 중 36.5%인 64만910명에 달했다. 미상(38.9%)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숫자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정신장애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그 이면의 사회적 원인을 줄이는 데 다각도로 힘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힘들어질수록 정신질환자가 늘어난다는 가설이 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금이 굉장히 어렵고 힘든 때여서 묻지마 범죄가 늘어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자살이 증가하는 점도 같은 맥락인데, 원래 자살과 타살은 맥락이 같다"며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서 공격성이 밖으로 나타나면 타살이 되고, 안으로 가면 자살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범종·신태현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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