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를 당한 공군 20전투비행단 이모 중사 사망 사건으로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사퇴했다. 후임이 내정됐으나 검증을 이유로 임명이 미뤄지고, 낙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근에는 이 중사가 선임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신고한지 3달여가 지난 뒤에서야 국방부 검찰단이 부랴부랴 가해자 장모 중사를 구속했다. 여론에 몰리자 그제야 움직이는 모양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건이 터지자 대책들이 쏟아졌다. 국방부는 ‘성폭력 예방 제도개선 전담팀(TF)’을 꾸렸고,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민·관·군 합동위원회도 출범했다.
정부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다시 꺼내들었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군사법원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했다. 이번엔 정부가 군 사법체계 개혁에 드라이브를 거는 듯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군사법원법 개정안은 군 내부 반발과 여야 정쟁에 막혀 법안심사 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개정안이 소위 문턱이라도 넘으려면 원안의 형태가 보이지 않을 만큼 쪼그라들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기시감이 든다. 2014년 ‘윤 일병 사망 사건’도 군 사법체계 개혁의 단초가 됐지만 전쟁 발발 가능성을 내세운 군의 반발로 실질적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개정안 원안은 당초 현 정부안과 골자가 같았으나 법안소위, 본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뼈대가 깎이고 또 깎였다.
2015년 이후 지휘관의 형 감경 권한이 선고형량의 3분의 1미만으로 줄었다지만 아직도 지휘관은 수사 단계부터 기소, 판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부대 지휘관의 사람, 장교가 군사법원 심판관석에 앉아 재판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기본 틀은 바뀌지 않은 셈이다.
그간 여야가 날 선 각을 세우며 시간을 끄는 동안 피해자와 유가족의 상처는 곪을 대로 곪았고, 부대 내에선 범죄를 은폐하고 부실 수사하는 관행이 또 다시 재연됐다.
공군 성추행 피해 중사 사망 사건이 불러낸 이번 군사법원법 개정안은 군 사법 개혁을 이뤄낼 마지막 기회다. 개정안의 원안은 2015년 때처럼 시류에 휘둘려 그 형태를 잃어선 안 된다.
군사법원 전면 폐지가 어렵다면 군사재판 항소심이라도 서울고법으로 이관돼야 한다. 그것도 어렵다면 군사범죄가 아닌 성범죄 등 일반 형사사건만큼은 일반법원에서 재판 받아야 한다.
민간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조차 없다면 어떤 대책도 군의 폐쇄성을 깨지 못할 것이다. 개혁의 핵심은 권한의 분산이다.
박효선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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