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정책, 미국 꽁무니만…후행 규제 '논란'
스테이블코인 발행·감독권 충돌…법안 교착의 핵심
미국·EU는 제도권 편입 가속…우리와의 격차 확대
규제 공백에 따른 자본 유출·투자자 피해 우려
2025-12-11 16:20:10 2025-12-11 16:30:14
[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우리나라 가상자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정책·제도 환경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가상자산 주요국인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이 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는 동안, 우리는 지난 2017년 이후 8년째 이들의 흐름을 쫓는 데 급급한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1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1일 당정 협의에서 10일까지 디지털자산 기본법 정부안 제출을 금융위원회에 요청했지만, 금융위는 기한 내 제출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핵심 법안인 '디지털자산 기본법(2단계 법안)'이 기초 설계 단계부터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법안 논의가 멈춘 가장 큰 이유는 스테이블코인을 누가 발행하고, 누가 감독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 기관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은 통화 안정성과 규제 준수를 이유로 은행이 지분 51%를 넘는 컨소시엄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금융위는 글로벌 기준에 비춰볼 때 특정 주체가 지배적 지분을 가져가는 구조는 맞지 않는다며 은행 독점·지분 강제에는 선을 긋고 있습니다.
 
감독 권한 배분도 쟁점 사안입니다. 국회 발의안과 정부안 초안은 인가권을 금융위에 두는 형태지만, 한은은 관계 기관이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합의 기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의 경우 가상자산과 관련한 '종합 틀'을 점차 완성해 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은 지니어스(GENIUS) 법안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발행 기준과 1대1 준비금 요건을 명확히 하면서 제도권 편입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상자산 시장 구조를 다루는 클래리티(CLARITY) 법안 논의와 실물자산 투자를 블록체인 기반 거래·결제로 유도하는 OB3(One Big Beautiful Bill) 법률 논의까지 이어지며 차세대 금융 구조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전문가들은 규제가 더 늦어질 경우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이 가속화하고, 투자자의 사기 피해 확대가 커질 수 있는 점을 가장 큰 위험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제도 공백이 길어질 경우, 국내 투자자금은 파생상품·스테이블코인 등 제도화가 진전된 해외시장으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동시에 발행·유통 기준이 없는 상태가 길어질수록, 부실 프로젝트와 유틸리티 코인 기반의 사기성 발행·영업이 반복돼 피해가 누적될 수 있습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신뢰가 훼손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는 셈입니다.
 
결국 미국의 뒤만 쫓는 후행 규제가 반복되는 데다, 이마저도 지연되는 모양새가 심화하고 있는데요. 이는 시장 신뢰와 투자 안전성을 동시에 약화시키며 국내 가상자산 산업의 기반 자체를 약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에 가상자산 업계는 국내 규제 속도가 글로벌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해 스테이블코인 참여를 단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빠른 입법을 위해서 디지털자산 기본법과 스테이블코인법을 분리해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동시에 제기됩니다.
 
강성후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 회장은 "핵심은 법이다. 입법 속도 부족은 국내 시장의 주도권 상실과 자본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강 회장은 2017년 '가상통화 정부 종합대책' 이후 이어져온 미국, EU,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안전위원회(FSB) 흐름을 본 뒤 후행 규제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미국 법안을 지켜본 뒤 움직이는 게 아닌 우리가 먼저 룰을 제안하는 국가가 돼야 주도권을 지킬 수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시황판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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