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제 형편이 어떤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분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냐고요. 제 얼굴도 한번 찾아와서 보지 못하셨으면서."
지난 6월 근무 중 사망한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남편 이모씨는 13일 관악캠퍼스에서 진행된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구민교 전 서울대 학생처장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씨는 "학생처장은 (사람의 인격이 아닌) 직업이라는 껍데기를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환경) 미화를 하는 사람은 천박한가. 왜 그렇게 우리 가족들을, 아내를, 저를 모욕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아내와 제가 모은 모든 재산, 아파트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다 썼다"며 "돈은 없지만 마음은 부자"라고 했다.
구 전 처장은 지난 9일 게시한 페이스북 글에서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고 표현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후 해당 게시글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돌아가신 분의 사정이 안타깝더라도, 그리고 유족의 사정이 딱하더라도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일방적 주장만으로 또 한명의 무기계약직 노동자인 중간 관리자를 가해자로 만들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피해자 코스프레' 글과 해명글은 내려갔지만 논란은 더욱 확대됐다. 구 전 처장은 결국 최근 보직 사임했다.
과거 이씨는 경영 쪽에서, 고인은 유력 경제지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가정 형편이 넉넉한 편이었다. 그러던 중 1999년 이씨는 몽골에서 빈곤으로 인해 유기되는 아동들의 실상을 접한 뒤 충격을 받아 NGO 활동에 투신했다고 한다. 몽골에서 빵 공장을 인수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댔다. 2003년에는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건너가 의료 봉사에 매진했고. 이후에는 아프리카 세네갈로 가서 직업 교육을 하다가 2017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겨진 유족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을 생각하던 고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고 했다. 이씨는 "(사망 당일)아내가 딸 티셔츠를 사서 (오후) 2시까지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면서 "티셔츠를 사서 오기엔 너무 빠듯한 시간이었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누웠을까"라고 말했다.
고인은 지난달 26일 토요일 서울대 기숙사 휴게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점심 12시에 퇴근했어야 했지만 밤 10시가 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자 걱정이 된 딸이 이씨에게 연락을 취했고 이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이씨는 서울대에서 하루 종일 기계 관리 업무를 하고 있었지만, 경찰의 수사 방침상 따라나설 수도 없었다. 이후 11시 경찰은 휴게실에서 고인을 발견하고 이씨에게 연락을 줬다.
이씨는 "퇴근하기도 전인데 힘이 들어 이불 깔고 누은 모습이었고, 옆자리에는 컵라면 흔적이 있었다"며 "힘들었고 배고팠고 쉬고 싶어서 누웠다고 추정할 뿐"이라고 말하면서 목이 메었다.
가족들은 사회와 학교가 '갑질의 정도' 내지 기간이 아닌 '갑질 유무'에 초점을 맞춰주길 촉구하기도 했다. 이씨는 "갑질은 단 한번이라도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면서 "관리자들도 생각조차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2021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는 게 정말 가슴 아픈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유족들은 학교가 직원에게 버거운 영어 시험을 내거나 미화 관리에 필요없는 제초처럼 과중한 일을 강요했다는 점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씨는 "시험은 가르친 다음에 치는 것인데 가르친 적도 없이 갑자기 시행했다"면서 "제초가 싫으면 근로 1시간 삭감해서 외주 주겠다는 방안에 대해서는 부당한 관리라는 생각을 (노동자들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초 업무가 힘들다는 청소노동자의 토로에 관리자는 근로 시간을 삭감해 해당 비용으로 제초를 외주 주겠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가 아닌 개별 노동자에게 임금 삭감을 언급한 것이기 때문에 청소노동자들이 항의하기도 했다.
서울대는 이번 사망 사건을 자체 인권센터에서 조사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씨는 "서울대에서 항상 이야기하는 명예가 걸린 문제라 공정하고 정의롭게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체 조사 결과 중에서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은 수긍할테고, 아니라면 그것도 수용해야겠다. 힘없는 사람이 무엇을 하겠느냐"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씨는 지난 2019년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사망한 이후 '땜질식' 처방을 한 결과가 아내의 사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씨는 "2019년 일이 있고 나서 어쩔 수 없이 근로 환경을 바꾸었으니 결과가 이렇지 않느냐"며 "앞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게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근무 부문을 다방면으로, 전반적으로 살펴 철저하게 바꿨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최근 근무 중 사망한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남편 이모씨가 13일 관악캠퍼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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