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민주당 경선 결과에 이낙연 후보 측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의 회동 추진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리한 회동 추진으로 이재명 후보 손을 들어주거나, 이낙연 후보를 패자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경선 불복 논란이 당에서 정리될 때 이재명 후보와의 회동에 나서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12일 청와대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최근 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근 (이재명 후보 측의) 면담 요청이 있었고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청와대는 이재명 후보 측의 요청이 들어오면 면담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5월13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에 참석해 기념촬영 후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후보로서는 이낙연 후보가 당 지도부 및 선관위의 무효표 처리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원팀'으로 화학적 결합이 가능할지 우려가 짙은 터라 문 대통령과의 만남을 조속하게 추진하고 싶어한다. 문 대통령과의 회동을 통해 친문(친문재인) 지지층을 흡수하고 정권재창출을 위해 '원팀' 정신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면서 경선 후유증 또한 최소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가 민주당 대선주자로 선출된 직후 이낙연 후보 측의 이의 제기 움직임에 문 대통령의 '축하 메시지'를 언급하며 승복을 압박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문 대통령도 민주당 경선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인정했으니 승복하라는 주장이다. 특히 이낙연 캠프 소속 의원들 대다수가 친문이라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강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란 계산도 깔렸다.
앞서 2002년 4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후보 확정 이틀 만에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회동했고, 2012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확정 13일 만에 정적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만났다. 이처럼 당적을 가진 대통령이 여당 후보를 만나는 일은 관례로 굳어져 있는 만큼 문 대통령 입장에서 이재명 후보와 회동하는 일은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다만, 최근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보면 경선 결과를 둘러싼 논란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나 회동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경선 결과를 놓고 당내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이재명 후보와 섣부른 소통에 나서기에는 청와대 입장에서 여러모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의 면담 요청이 있기 전부터 청와대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앞서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의 통화에서 "아무래도 여당 상황이 좀 그렇다"며 "자극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서는 당 상황이 정리가 되면 이재명 후보 쪽에서도 (문 대통령과의 회동을) 요청하지 않을까 싶다"며 "이재명 후보 쪽도 어차피 당이 결속이 돼야 본선에서도 유리한데, 지금 저쪽(이낙연 후보)을 자극할 필요가 없어서 조심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의중을 전하는 이철희 정무수석과 이재명 후보의 만남도 예정돼 있지 않다. 이재명 후보 측 관계자는 "오늘이나 내일 중 (이철희 수석이) 이재명 후보를 방문한다고 했고, 그때 문 대통령과의 회동 의사를 전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철희 수석은 "그런 일정 자체가 없다"며 "(대통령) 메시지가 나왔으면 됐다"고 이재명 후보와의 만남이 예정돼 있지 않은 점을 알렸다.
여기에 문 대통령은 이날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 대해 검찰과 경찰은 적극 협력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달라"며 이 같이 지시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그동안 청와대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점과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대장동 의혹에 대해 거리를 둬왔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문 대통령이 직접 공식 입장을 냈다.
이 또한 문 대통령 입장에서 이재명 후보를 만나 대장동 의혹에 대해 침묵한 채 민주당 후보로 지명된 것에 대한 덕담과 대선 승리를 기원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칫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후보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식으로 비쳐 야권의 공세를 정면으로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결국 '이재명 후보가 자신에게 관련된 사안을 직접 정리하고 오라'는 것이 청와대의 기류로 읽힌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문 대통령에게 이낙연 후보 측의 경선 불복 부담은 당 지도부에서 해결하고 문 대통령이 안게 될 대장동 의혹 수사도 오늘 발언으로 정리를 한 것"이라며 "이재명 후보와 만나기 위한 준비 작업 단계를 밟아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가을 한복문화주간을 맞아 한복을 입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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