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빨간불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파란불일까, 녹색불이나 초록불일까. 각자의 답변은 후천적 학습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스위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는 랑그(Langue)와 파롤(Parole)로 구분된다. 우리말에서 보자면 문자 체계나 문법은 랑그에, 이를 보면서 실제로 발음하는 것은 파롤인 셈이다. 문법과 발음을 살펴보면 각 언어가 가진 특징은 문화권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이런 특징은 후천적 학습으로 익힐 수 있다.
다양한 언어의 구성은 블록의 조립과 비교할 수 있다. 비슷한 뜻을 가진 어휘라도 글이냐 말이냐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방향이나 쓰일 위치를 다르게 둘 수 있다. 상황에 맞는 언어의 사용은 대중의 공감을 얻는 좋은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이런 능력은 정치인에게 매우 중요한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연설이나 토론의 장이다.
언어에 대한 이런 생각을 적어가는 이유는 최근 대선에 나선 한 주자가 빈곤층 비하 발언을 한 상황을 곱씹으면서다. 그는 극빈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이는 가난과 학문, 자유의 연관성을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넘어 흑백논리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해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예로부터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했는데,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 여기다 가난함과 부유함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 등의 고민이 더해진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사실이 더 부끄럽다.
'가난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 이 문장을 보면서 시인 신경림의 문장을 잠시 빌려본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오늘날 젊은이들의 가난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만 담은 것일까. 세상일에 있어 명료하게 정리된 답변이라고 해서 항상 정답은 아니다. 정당을 떠나 윤석열 후보가 정치인으로서 규정한 극빈과 배움의 기준 또한 그렇다.
반대로 스마트폰 활용에 대한 배움을 기준으로 MZ세대가 본다면 윤 후보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APP)을 통해 구인·구직 정보를 얻을 때가 온 것 같다'는 그의 말에 MZ세대는 헛웃음을 친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시선에서 보자면 윤 후보도 스마트폰 활용이나 컴퓨터 사용 등에서 배움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이에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간 배움에 대한 인식과 지식의 차이를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윤 후보에게 측은지심을 가져야 할 상황이다.
윤 후보의 이번 행보처럼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크거나 작은 잘못을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반성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보인다. 이런 행태들은 하나둘 모이고, 결과적으로 각자가 속한 공동체를 무력화시키거나 갈등에 빠뜨릴 수 있음을 생각할 때다.
대선에 나선 한 후보가 피력한 가난과 배움에 대한 소신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속상한 연말에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올해를 마무리하고 2022년에 대한 기대를 적고 싶지만, 걱정이 앞선다. 2021년이 아직 하루 남아있으니 마음속으로 잘못이 있다고 느낀다면 올해를 넘기기 전에 털어내고 출발할 시간은 충분하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제대로 된 사과든 반성이든 해야, 끝이 나야 끝이다.
조문식 국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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