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갈 길 바쁜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성난 불심 앞에 직면했다. 정청래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촉발시킨 '봉이 김선달' 논란이 채 진정 국면에 접어들기 이전에, 정 의원이 다시 '탈당 불가'를 언급하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연출됐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정 의원이 국민의힘을 내홍에 빠트린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 표현을 차용, '이핵관'(이재명 핵심관계자)을 언급하면서 민주당 또한 발칵 뒤집혔다.
이 후보는 20일 오후 서울시 성동구 'KT&G 상상플래닛'에서 미국 투자자 짐 로저스와 화상 대담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불심 수습과 정 의원의 이핵관 발언에 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내용을 잘 몰라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가 그렇다"며 대답을 피한 채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 찬 표정이었다. 이 후보가 질문에 답을 하기까지 5초간 적막이 흘렀을 정도다. 불심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당 내홍을 걱정하는 이 후보의 고민이 엿보였다.
사건은 지난해 국정감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 의원은 경남 합천군 해인사가 등산객들로부터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걸 통행세로 지칭하고 '봉이 김선달'에 비유, 불교계의 반발을 샀다. 불교계는 정 의원이 발언과 사후 대처에 미흡한 민주당의 태도를 지적, 불교 탄압으로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불교계에 영향력이 큰 교계언론에선 이번 일을 '봉이 김선달 빗대 사찰을 사기꾼 집단으로 매도'(법보신문), '신 불교박해'(불교신문)라고 보도했다.
2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코트'에서 열린 문화예술인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태가 커지자 이 후보는 물론 부인 김혜경씨까지 불심 수습에 나섰다. 이 후보는 새해 첫날 경남 양산시 통도사를, 16일에는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를 찾았다. 김씨도 5일 충남 공주시 마곡사에 이어 6일 예산군 수덕사, 12일 대구시 동화사, 13일 경북 경주시 불국사, 19일 전북 김제시 금산사를 잇달아 방문했다. 17일엔 이 후보의 후원회장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윤호중 원내대표 등 40여명이 서울시 종로구 조계사를 방문해 108배를 하고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에 거듭 사과를 표했다. 정 의원도 함께했다.
그런데 조계사에서 108배까지 했던 정 의원이 이튿날인 18일 밤 느닷없이 이핵관을 언급하며 논란을 부추기자, 민주당은 발칵 뒤집혔다. 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핵관이 찾아와 이 후보의 뜻이라며 불교계가 심상치 않으니 자진 탈당하는 게 어떠냐고(말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 의원 발언은 국민의힘 내홍의 원인이자 윤석열 후보의 리더십에 결정적인 상처를 낸 '윤핵관' 표현을 빌린 것이어서 민주당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민주당은 다급히 이핵관 진화에 나섰다. 이 후보는 정 의원 발언이 전해진 직후인 19일 기자들과 만나 "누가 정 의원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아는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선대위 공동상황실장을 맡은 조응천 의원은 이튿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아는 한 당에 이핵관은 없다"고 했다. 대신 조 의원은 수습을 위해 정 의원이 자진 탈당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솔직히 말을 못 하지만 마음속으로 정 의원이 탈당했으면 하는 의원들이 많을 것"이라며 "지금만큼 선당후사가 필요한 때가 언제이겠느냐"고 했다. 이어 "민주당이 진정성을 갖고 불교계와 대화와 접촉을 하고(있다)"며 "(정 의원의 탈당은)불교가 요구하는 것 중 하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사실상 탈당을 촉구했다.
1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부인 김헤경씨가 전북 김제시 금산사를 방문해 주지 일원스님을 예방하고 차담을 나눴다. 사진/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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