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유근윤·전연주 인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치러진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확진자와 격리자를 위한 기표소가 별도로 마련됐다. 하지만 사전준비의 미흡 등 엉망인 관리체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았고, '비밀선거' 원칙까지 무시됐다. '부실투표' 논란은 '부정투표' 의혹으로까지 번질 위기에 처했다.
4~5일 양일 간 처리진 20대 대선 사전투표 중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투표는 5일에만 허용됐다. 이들에게는 방역당국이 외출을 허용한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사전투표소에 도착할 경우 방역복을 입은 현장 안내요원의 지시로 투표를 할 수 있다고 안내됐다. 하지만 <뉴스토마토>가 취재한 결과 감염자 인솔부터 허점이 드러났다.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마련된 투표소의 경우 감염자들이 오후 5시 즈음해 투표소에 도착했지만 안내요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확진자·격리자와 비감염자들 간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우모씨(30대·여)는 "확진자들이 아무 통제 없이 투표소 부근에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비감염자와의 사회적 거리두기도 안 지켜졌다. 매뉴얼이 부족한 것 같은데 대선 당일에는 혼란이 많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양천구 목동의 한 투표소에선 확진자·격리자 기표소가 바람에 넘어졌다가 한참 뒤 복구됐다. 기표소를 관리하는 요원도 보이지 않았다.
20대 대선 사전투표는 3월4~5일 이틀 동안 진행됐다. 5일엔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를 위한 별도 기표소도 마련됐다. 하지만 감염자들에 대한 안내가 부족, 확진자·격리자와 비감염자들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는 일도 있었다.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의 한 투표소에선 확진자·격리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선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서울 강서구 우장산동의 한 투표소에선 감염자 투표 행렬을 예측하지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수습하다가 비밀선거 원칙까지 무시됐다. 이곳에서 투표한 확진자 신모씨(40대)는 "정부가 5시부터 외출해서 오후 6시 전까지 투표소에 도착하면 투표할 수 있다고 문자를 보냈고, 투표소에 와서 줄을 서느라 밖에서 30~40분가량 추위에 떨면서 기다렸다"며 "그런데 정작 오후 6시가 되니까 투표소 측에서 '확진자가 너무 많아 투표를 다 못 하니까 집으로 그냥 돌아가시라'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추위에 떨던 확진자들이 '왜 투표를 못 하게 하느냐'고 항의하고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하니, 그제야 (안내원들이)투표를 재개한다고 했다"고 부연했다.
더 큰 문제는 이후에 벌어졌다. 신씨는 "겨우겨우 투표를 했더니 이번엔 투표한 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게 아니라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와서는 '자기들한테 달라'고 했다"며 "투표는 비밀선거가 원칙인데 어떻게 투표 용지를 주냐고 항의하자 겨우 투표함을 만들어 줬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신씨는 "역대급 투표율을 기록하다 보니 투표소 측에서도 확진자·감염자 투표자가 이렇게 많이 몰릴 것을 예상 못 했을 순 있다"면서도 "하지만 투표자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거나, 투표함도 준비하지 않는 건 명백한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대 대선 사전투표는 3월4~5일 이틀 동안 진행됐다. 5일엔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를 위한 별도 투표도 진행됐다. 하지만 투표소 측의 준비 부족으로 투표함이 미처 마련되지 않아 감염자들의 항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서울시 강서구 우장산동의 한 투표소에선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들이 비밀선거 원칙이 무시됐다며 투표소 측에 항의하는 일도 일었다. (사진=독자 제공)
비슷한 논란은 곳곳에서 제기됐다. 이 같은 사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인증 사진'들이 빠르게 퍼지면서 정치권으로까지 논란이 확산됐다. 충남 당진시의 한 투표소에선 감염자들에게 배포할 투표 용지가 부족한 데다 별도 기표소가 아니라 플라스틱 바구니에서 투표를 하도록 해 논란이 됐다. 또 신분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별도의 투표함이 없어 현장에서 선거 사무원이 종이 박스나 플라스틱 용기, 쇼핑백에 기표용지를 수거해 대리 전달하는 일들이 발생해 유권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20대 여성 정모씨는 "확진자들이 2시간 가까이 투표소 밖에서 대기했고, 다이소에서 파는 이상한 바구니를 주면서 여기에서 투표를 하라고 했다"며 "선관위 직원이 '감염자는 투표소 출입이 안 되니까 자기가 용지를 받아서 투표함에 넣겠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사람들이 항의해서 직접 투표함에 넣게 됐다"며 "투표 끝나고 선관위에 전화해 항의하면서 '부정선거 아니냐', '내 표가 제대로 가긴 하는 거냐'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6일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을 기록할 만큼 높은 참여열기와 투표관리인력 및 투표소 시설의 제약 등으로 인하여 확진 선거인의 사전투표 관리에 미흡함이 있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드러난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면밀히 검토하여 선거일에는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조속히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다만 일부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 등에 대해선 "이번에 실시한 임시기표소 투표방법은 법과 규정에 따른 것이며, 모든 과정에 정당 추천 참관인의 참관을 보장하여 절대 부정의 소지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병호 기자, 유근윤·전연주 인턴 choib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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