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이번엔…"부작용 없는 설계가 관건"
대법 '디스커버리 연구반' 올 10월 결론 발표
법조계 "입증 책임 명확해져 소비자에 유리"
"미국서 증거자료 숨기면 소송에 불리"
재계 "특허괴물들 소송남발 악용 가능성도"
2022-03-29 06:00:00 2022-03-29 13:42:39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사법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대법원이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재판 시작 전 양측 당사자들이 증거를 공개하게 해 상호간 정보를 인지함으로써 쟁점을 명확히 하도록 하는 제도다.
 
판사, 변호사 등 10명으로 구성된 대법 ‘디스커버리 연구반’은 올 10월 쯤 이 제도에 관한 연구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법조계에선 '한국판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그간 기업과의 소송전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던 소비자 입증책임이 완화되고, 재판 진행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에서다.
 
최승재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은 “미국의 경우 소송 전 단계에서 디스커버리 절차가 진행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준비절차 단계에서 디스커버리 절차가 이뤄지는 것”이라며 “(항소 등으로 길어지는) 재판 절차를 촉진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선 피해자 등 원고 측이 법원에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해 관련 증거를 입수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론 상대방이 이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이런 절차를 간소화하고, 재판 전부터 증거조사가 충분히 이뤄져 1심에서 사실관계 확인이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영기 미국변호사(위더피플 로그룹 법률사무소)는 “현재 한국에선 피고가 대기업인 경우 (소비자 등 피해자들의 신청에 의한)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 응하지 않더라도 과태료를 내는 것 외에는 (증거제출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반면) 미국에서는 원고나 피고가 증거자료를 숨기거나 파기하면 법정모독 혐의 등으로 벌금을 물릴 뿐 아니라 소송에서도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민사뿐 아니라 (미국) 형사소송에서도 검사가 증거를 오픈하지 않으면 징계 수준이 아닌 형사처벌을 받는 등 (미국에서 디스커버리 제도는) 워낙 강력한 제도다 보니 당사자들로선 증거를 함부로 파기하거나 인멸할 수 없게 된다”며 “그 대표적 사례가 미국에서의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분쟁’ 이슈”라고 설명했다.
 
앞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 기술 인력을 대거 빼가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2019년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송을 제기했다. 미 국제무역위원회는 SK이노베이션이 증거를 인멸하고 포렌식 명령을 위반한 점 등을 들어 LG화학 측 손을 들어줬다. LG화학이 한국 법원이 아닌 디스커버리 제도를 시행하는 미국에 소를 제기한 배경이다.
 
재계 일각에선 한국판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될 경우 특허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 특허기술로만 수익을 내는 외국의 이른바 ‘특허 괴물’ NPE(특허관리전문회사)들이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를 타깃 삼아 마구잡이식 특허소송을 낼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반면 오히려 한국에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입증 책임이 좀 더 명확해 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특허 전문’ 오성환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특허소송의 경우 주로 무체재산권을 다투는 소송으로 손해를 특정하거나 입증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며 “이를테면 내 특허기술을 누군가가 써서 돈을 벌었다고 했을 때 그에 따른 나의 손해를 입증해야 하는데 그 손해액을 다 입증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상대방(피고 측)이 영업비밀이란 명목 등으로 증거자료를 감추려 하다 보니 (특허 침해를 당한) 권리자가 증거를 보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며 “증거개시(디스커버리)를 통해 권리자의 손해를 어느 정도 입증할 수 있도록 하고, 상대방이 악의적으로 증거를 감추려 한 흔적이 있다면 이에 대한 가중처벌을 하는 조항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설계를 잘못하면 그런 우려(특허소송 남발, 영업비밀 유출 등)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밀유지명령(영업비밀 등 노출 금지) 등 이미 도입돼 있는 제도들이 있다”며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입법화 과정에서 (연구된) 우려들에 대응할 수 있는 추가 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겠다”고 제언했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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