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반팔티, 벙어리장갑, 절름발이 정책, 꿀 먹은 벙어리, 결정장애…' 이처럼 무심코 쓴 표현이 장애인 혐오·차별 발언이 될 수 있다. 이런 표현이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정상성’을 규정한 것으로,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에게서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언어학자들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물론 장애를 비하하는 인식도 스며 있다고 지적한다.
반팔은 팔이 반이라는 뜻으로, 이를 ‘반소매’로 바꿀 수 있다. ‘결정장애’는 결정을 못 하는 행위를 ‘장애’로 비하해 표현하는 것으로 ‘결정이 힘들다’, ‘우유부단(優柔不斷)’ 등으로 변경해야 한다. 절름발이와 벙어리는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차별 표현이다. 절름발이 대신 ‘지체 장애’로 표기해야 하고, ‘벙어리 장갑’ 대신 ‘손모아장갑’으로 말해야 한다. ‘꿀 먹은 벙어리’와 같은 속담도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비장애인은 이러한 표현을 혐오·차별로 규정하는 건 너무 예민한 처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보통명사처럼 실생활에서 쓰이고 있고, 특정인을 가리키는 게 아니지 않냐는 것이다. 반면 장애인들은 <뉴스토마토>와 인터뷰에서 "명백한 혐오와 차별이 서려 있는 표현"이라고 맞섰다. 최근 정치인들의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해 ‘차별구제’ 소송을 제기한 지체장애인 조태흥씨는 “긍정의 의미로 절름발이, 장애자 같은 말을 하는 건 아니지 않냐”며 “본인들이 들었을 때 기분이 나쁜 말인데, 그걸 비하가 아니라고 하면 뭐가 비하냐”고 했다. 또 다른 소송 당사자인 지체장애인 주성희씨는 “이런 발언을 들을 때마다 결국은 사회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져 화도 나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관계자들이 2021년 4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국회의원의 '장애 비하 발언'에 대한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소송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씨와 주씨 등을 포함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제기한 차별구제 소송은 기각됐다. 1심 재판부가 혐오감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재판에 회부된 장애인 비파 표현은 ‘절름발이 정책’, ‘외눈박이 시각’, ‘정신 장애가 의심되는 행위’ 등으로 정치인들이 빈번하게 사용되는 어휘들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이미 지난 2019년 인권위에서 정치권을 향해 ‘장애인 비하 발언을 멈추라’는 권고를 내렸음에도 정치인들이 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정치인들이 이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해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전달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조 씨는 “일반 시민들이 말하는 것과 사회 지도자 격인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발언의 영향력이 다른데 분별없이 쓰고 있다”며 “장애인을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동등하게 보는 게 아니라 그 이하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주씨도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 통합을 도모해야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비하 발언을 일삼아 시민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차별·혐오의 뜻이 담긴 표현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어가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일컬어지는 만큼 그 사회의 합의된 생각이 드러나는데,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회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전체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는 저서 <말이 칼이 될때>에서 “혐오 표현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당사자가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며 “자율적으로 이런 현실을 타파하지 못하고 있다면 무언가 인위적인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문과 교수는 온라인 인문 플랫폼 <인문360>의 칼럼에서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면,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는 도구(언어)를 고치고 새로 만드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김지영 독도사랑예술인연합회 회장이 20일 대구 상인동 위령탑 공원에서 제42회 장애인의 날 슬로건인 "장애인의 편견을 넘어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하여" 붓글씨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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