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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포스트 코로나,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 '양날의 칼'
2022-05-04 06:00:00 2022-05-04 06:00:00
고재인 증권부장
1차 세계대전과 비슷한 시기에 발병한 스페인독감은 지금의 코로나19보다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세계 1차 대전으로 사망한 사람이 1000만명에 달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이 바이러스의 참상을 덮은 셈이다. 더욱이 전쟁에 참전을 독려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스페인독감의 위험성을 알리지 않고 쉬쉬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과적으로는 스페인독감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참혹한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훨씬 뛰어넘었다. 정확한 집계는 되지 않지만 약 5000만명가량이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거의 작은 한 국가가 소멸할 정도의 사망자를 기록한 것이다.
 
팬데믹보다 전쟁의 여파를 강조한 유럽의 경우 국가 재건을 위해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채무를 지게 되면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된다. 특히 패전국인 독일의 경우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화폐는 휴지 조각이 될 정도로 경제는 피폐해졌다. 결국 유럽은 미국에 막대한 빚을 지게 되고 미국은 이 기회에 세계 최대의 채권국과 기축통화 지위를 얻으며 세계경제 패권을 주무르게 된다. 
 
코로나19 이후 양상은 스페인독감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 더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100년 전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국가 채무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다. 코로나 팬데믹이 엔데믹(풍토병화) 단계로 넘어가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전쟁으로 인한 식량과 에너지 가격 인상이 아직 물가에 다 반영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동부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등이 금리인상과 함께 가파른 물가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헝가리 화폐 포린트의 경우 러시아 루블화 다음으로 가장 큰 하락 폭을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물가 안정과 경제 활성화 두 가지에 대해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두 가지 정책목표 중 한 가지에 치중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된다.  
 
"인플레이션은 호랑이와 같아서 한번 풀어주면 우리에 다시 가두기가 어렵다." 2011년 중국 돼지고깃값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자 원자바오 전 총리가 한 말이다. 돈이 풀려 물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해 다시 물가가 오르는 악순환을, ‘뛰쳐나간 호랑이’로 비유한 것이다. 
 
국민이 굶주리면 봉기가 뒤따르게 된다. 서민 총리로 중국 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원자바오 총리는 물가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인간은 과거 경험을 통해서 배우고 더 발전한다. 전쟁으로 묻힌 스페인 독감이었지만 우리가 배울 것은 충분히 있다. 국민들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성장과 물가 안정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정책 목표는 양날의 칼이다. 
 
경제 성장에 치중해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을 시행할 경우에는 물가 상승이 이어지고 결국 빈부격차를 더욱 키울 수 있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공급 부족에 따른 것이라는 이례적 상황임을 간과하고 통화 정책으로 물가를 잡으려 하다가는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저성장 속에서 물가 상승,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긴축적 통화 정책 기조 속에서 경제 성장을 유인할 수 있는 묘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새 정부의 정책 능력 검증대로 부상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재인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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