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7일 미국으로 떠났다. 현실정치와는 일정부분 거리두기가 불가피해졌다. 대선 패배 이후 두 달도 안 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조기 등판했던 이재명 의원과는 분명 다른 행보다. 차별화를 통해 차기 대선을 준비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떠나는 순간까지 이 의원을 겨냥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강물이 직진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먼 방향을 포기하지도 않는다"며 "강물은 휘어지고 굽이쳐도 가는 길을 스스로 찾고 끝내 바다에 이른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남겼다. 이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글(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을 인용한 것으로, 친노 및 친문과 함께 함을 나타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전 대표는 미국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1년간 한반도 평화와 국제정치에 대해 공부할 계획이다. 국무총리 이력을 살려 미국 정계와 학계 등과의 교분도 넓힐 계획이다.
이 전 대표는 특히 지지자들을 향해 "어떤 사람은 경멸하고 증오한다. 이것을 여러분이 존중과 사랑으로 이겨줄 것이라고 믿는다"며 "어떤 사람은 저주하고 공격한다. 그것을 여러분이 정의와 선함으로 이겨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사랑과 정의, 열정과 상식이 승리한다고 저는 믿는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재명 의원과 강성 지지층을 뜻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또 당이 엄중한 상황이라는 기자들 질문에 "동지들이 양심과 지성으로 잘 해결해 가리라 믿는다"고 했다. 당내 극심해진 계파갈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방선거 패배 직후인 지난 2일 이재명 의원을 겨냥해 "책임자가 책임지지 않고 남을 탓하며 국민 일반의 상식을 행동으로 거부했다"며 "광주 투표율 37.7%는 현재의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탄핵"이라고 비판했다. 대선 이후 당내 정치에 거리를 두던 이 전 대표가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재명 불가론'을 피력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는 곧 친문계 중심으로 제기된 '이재명 책임론'의 기폭제로도 작용했다. 그러자 친명계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이 전 대표가 적극적으로 이 의원을 돕지 않았다며 패배의 책임을 이 전 대표에게 돌리기도 했다. 강성 지지층 간에는 이를 두고 설전이 벌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인신공격성 발언들도 난무했다.
이 전 대표로서는 대선 이후 정치적 선택지가 협소해졌다. 당내 경선에서 대역전을 바라며 국회의원(종로) 직에서도 사퇴, 마땅한 활로가 없었다. 8월 전당대회가 예정됐지만, 이재명 의원 출마가 기정사실화되며 계파 간 수장끼리 맞붙는 전면전이 될 수 있다는 염려에 처음부터 출마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국무총리와 당대표를 모두 지낸 이력도 그의 발걸음을 잡았다. 오히려 측근 의원들 사이에서는 "전당대회 출마 자체가 이 의원에게 명분을 심어줄 수 있다"는 기류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미국 유학을 계획했지만 이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이와 관련해 "어떤 사람들은 국내가 걱정스럽다며 어떻게 떠나냐고 나무라지만,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공부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며 "어떤 분들은 왜 아직까지 (미국으로)안 갔냐고 하는데, 바로 가고 싶었지만 대선과 지방선거 때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사진=이낙연 전 대표 페이스북 캡처)
이재명 의원을 향한 이 전 대표의 비토는 전당대회의 최대 승부처인 호남 표심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도 이 의원은 전북에서만 승리했을 뿐, 당의 심장부인 광주와 전남에서는 이 전 대표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 전 대표의 정치적 근거지는 호남이다. 전남에서 4차례 국회의원을 지냈고, 전남지사를 역임하는 등 호남의 기반이 상당하다.
한편 이 전 대표는 출국에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하는 등 당의 정통성이 자신에게 있음을 대내외에 간접적으로 알렸다. 공교롭게도 이 전 대표가 출국하는 이날 이재명 의원은 국회에 첫 등원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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