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신 어디로)③민주당, '팬덤정치 정당' 전락…확장성 없는 배타적 지지층 '한계'
노사모, 2002년 대선 승리에 기여…노무현 비판적 지지·생산적 논쟁 지향 특징
민주당 팬덤 문화 많이 달라져…무비판적 지지 경향에 정치인 의사결정까지 좌우
팬덤 문제 해결 위해선 정치 지도자 태도 중요…"지지자들의 긍정적 참여 유도해야"
2022-06-27 06:00:00 2022-06-27 06:00:00
'노무현정신'의 특징은 단단함과 유연함이 공존한다는 점에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과 원칙이 있다면 이를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가는 강단이 있었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 험지 출마를 세 차례 강행한 것이 대표적 예다. 패배할 줄 알면서도 도전한 건 자신이 품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정치적 가치를 조금이라도 진전시키기 위한 그의 의지 때문이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유연함도 있다. 한미FTA와 이라크 파병 결정은 당시에는 지지자들로부터 비판 받았지만 그의 유연함이 빛나는 결과물이었다. 또 보수정당과 연정을 해서라도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결기도 보여줬다. 이는 현재 민주당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가치다. 원칙있는 패배를 위해 험지에 출마하는 도전 정신도, 정파를 뛰어넘어 다른 진영의 정책을 과감히 수용하는 실용 정치도, 이제는 민주당의 옛 모습일 뿐이다. 그러면서 8월 전당대회를 앞둔 이 시점에 모두 '노무현정신'을 이야기한다. 친문(친문재인), 친명(친이재명)으로 갈라진 현 상황을 '노무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보려는 심산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노무현정신'은 알맹이가 빠진 전략적 구호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앞으로 3차례 연속 기획으로 진짜 ‘노무현정신’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편집자주)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이제 내년이면 대통령의 임기는 끝이 납니다. 그러면 노사모가 할 일은 끝이나는 것일까요? (중략) 우리 민주주의도 선진국 수준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뤄 가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대화와 타협, 관용, 통합을 실천해야 합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민주주의의 완전한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6월16일 영상을 통해 이와 같은 내용의 제8회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총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노 전 대통령은 이같이 언급한 뒤 "노사모는 노무현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라며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한국 민주주의 새로운 역사를 위한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임기 마지막 해를 보내던 시기에 전해졌던 노 전 대통령의 메시지에는 노사모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자신의 퇴임 이후 노사모가 어떠한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켜 나갔으면 하는지에 대한 바람이 나타나 있었다.
 
지난 2002년 4월27일 당시 노무현 대선 후보가 국민경선 승리 후 노사모와의 뒷풀이에서 권양숙 여사와 함께 힘차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노무현재단)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이 2000년 4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당시 선거는 1998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이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다시 한번 지역주의를 무너뜨려 보겠다고 나선 선거였다.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노 전 대통령의 노력을 안타깝게 여겼던 네티즌들은 그를 '바보 노무현'이라 불렀고, 그것이 노사모라는 팬클럽 모임으로 나타났다. 노사모는 2002년 국민 참여 방식으로 치른 대선 후보 경선에서 약세로 평가받는 노 전 대통령이 후보로 선출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에도, 재임기간 중에도, 퇴임 후인 2009년 검찰조사 국면에서도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다만 노사모가 현재의 정치적 팬덤 문화와 다른 점은 비판적 지지였다는 점이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4월27일 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직후 경기도 덕평에서 열린 지지자 모임에서 '여러분은 제가 대통령 되고 나면 뭐하지요'라고 질문하자, 노사모 회원들은 "감시"라고 외쳤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저를)감시도 하고 (저를)흔드는 사람들도 감시를 해달라"고 했다. 또 이들은 노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이라크 파병에 대해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
 
아울러 노사모는 생각이나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향해 논쟁적으로 갈등을 유발하려 하지 않았다. 노사모의 이러한 태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에 잘 나타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노사모에 대해 "이 사람들은 욕하는 싸움에는 끼어들지 않았다"며 "매우 냉정한 태도로 차분하게 논쟁했다. 상대방이 아무리 욕을 해도 예의 바르게 대응했다"고 평가했다.
 
노사모 이후 유력 정치인을 중심으로 팬클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노사모와 다르게 무비판적 지지 성격의 모임이 많이 늘었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팬덤 문화는 민주당을 좌지우지하는 '당심'으로 자리매김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나 정책과 반대 방향에 있는 인사들에게는 무조건적인 비판만을 가하는 방식으로 변질됐다. 급기야 '문자 폭탄' 등 적극적 의사 표시로 정치인의 의사결정까지 좌우하는 단계로 확대됐다. 또 민주당 내 팬덤 정치는 당내 정치인과 당의 외연 확장을 억제하기도 했다. 특히 팬덤에 기댄 강성 정치인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당의 유력 주장으로 오인되는 면도 있었다.
 
노무현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금 소위 개딸(개혁의 딸) 등 팬덤층이 형성돼 있는데 다른 정치인의 지지층을 적대시하는 갈등적인 경향을 띤다"며 "예전에 노사모는 정말 즐기면서 유쾌하게 캠페인을 했던 반면에 지금 정치인들의 팬덤층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대척점에 있으면 당내가 됐든, 당밖이 됐든 그 그룹을 적대시하고 배척하고 이런 게 굉장히 큰 차이점으로 보여진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2년 7월26일 노무현 대선 후보가 제주지역 방문 중 노사모 회원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노무현재단)
 
하지만 노사모는 현재의 팬덤 정치 문화와 많이 달랐다. 노무현정부 출신 인사들에 따르면, 노사모 내부에서는 상대에 대한 비난 보다도 상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에 방점이 찍혔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고 전해진다.
 
노무현정부 청와대의 마지막 대변인을 역임한 천호선 노무현시민학교장은 "당시 노하우라고 대통령 선거 홈페이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노 전 대통령의)상대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 공격적이거나 비난하는 글이 별로 없었다"며 "비난마저도 감정적 표현이 굉장히 절제되어 있었다. 오히려 다수의 내용은 '내가 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게 되었는가', '내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서 어떻게 설득했는가', 이런 이야기들이 주류였다. 굉장히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이야기였다"고 전했다.
 
천호선 교장에 따르면, 당시 노무현 대선 후보 홈페이지에는 선거와 관련한 전략적 제언을 하는 지지자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천 교장은 "핵심은 상대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우리의 설득 논리, 설득 방법에 대한 경험을 많이 공유하는 것들이 상당수였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노사모 내 문화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전 JTBC와의 인터뷰에서 "확장성을 가로막는 지지라면 진정한 지지가 아니다"라고 언급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열성적인 지지층이 있을 수 있으나, 혐오와 차별을 통한 편가르기 정치가 문제"라며 "오히려 간격을 좁히고 다른 사람들과 배타적으로 거리를 두게 하는 지지는 진정한 지지가 아니다"라고 무비판적이고 배타적인 지지를 경계했다.
 
지난 2008년 6월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노사모와의 산행에서 환호하는 노사모에게 미소로 화답하는 노란 모자를 들고 있다. (사진=노무현재단)
 
대다수 현재의 배타적인 팬점 정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지지자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정치 지도자가 지지자들을 향해 무조건적인 지지를 요청하거나 무조건적인 지지를 방조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소통과 설득을 통해 지지자들의 긍정적 정치 참여를 유도해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창민 전 정의당 부대표는 "팬덤 현상을 통해 정치 참여에 대한 긍정성을 확대하기 위해 리더들의 노력들이 병행돼야 한다"며 "팬덤 현상의 긍정성 보다 부정성이 드러날 때는 리더들이 자제를 요청하면서 그런 부분을 함께 해결하고, 팬덤으로 인해 잘못된 길로 가는 부분은 경계하면서 적극적이고 긍정적 참여를 유도한다든지 이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호선 교장은 "노 전 대통령이 후보 때도 그랬지만 대통령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지지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했다"며 "그게 노사모의 팬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팬덤이라는 게 일방적이거나 독선적이거나 공격적이거나 하지 않은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팬덤 정치는 있는 것인데,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위해서 이 정치인의 지지를 얼마나 확대하느냐, 축소하느냐라는 면에서 봤을 때는 그 지지를 받는 지도자의 태도가 중요하다"며 "(지지자들에게)주문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인이 지지자들과 끊임없이 교감하고 생각을 드러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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