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9일 제주에서 인터넷 역사 프로젝트 KR4050 워크샵이 개최됐다. 1982년 전길남 교수가 인터넷을 우리나라에 도입 개발하셨으니, 올해 40주년을 맞이하여 이 워크샵은 한국 인터넷 초기 발전 역사를 소개하고, 앞으로 50주년을 준비하는 과정에 필요한 지혜를 얻기 위한 토론을 진행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필자도 이번 워크샵에서 혁신창업 클러스터에 변천사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도입된 지 40년, 혁신창업 클러스터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혁신 클러스터라는 개념은 산·학·연 혁신주체들이 지리적으로 일정 지역에 모여 상호 협력을 통해 기술혁신을 효율적으로 이루는 것이다. 과학기술단지 또는 연구공원, OO 밸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미국 실리콘 밸리 지역에서 1950년대 스탠포드 리서치 파크에서 출발하여 HP, 페어 차일드, 인텔, 애플에 이르기까지 첨단 IT 기술혁신이 이뤄진 것이 전 세계적으로 혁신 클러스터가 출현하도록 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프랑스의 소피아 앙티폴리스, 영국의 캠브리지 사이언스 파크, 일본의 쓰쿠바, 대만의 신추, 중국 중관촌, 선전 등이 좋은 사례이다.
국내에서는 ’70년대에 대덕연구단지가 만들어지고 카이스트 대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90년대에 들어 강남에 테헤란 밸리가 나타났으며, 2010년대 들어서 분당, 판교 지역에 IT기술 혁신이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중앙정부 및 지역정부 에서 국내 여러 지역에서 바이오를 비롯한 산업 클러스터들을 추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아시아 지역의 혁신 클러스터는 정부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공통적으로 정부 기능의 일부가 특정 지역으로 이전하고 연구 진흥이 추진되는 패턴이다. 일본 쓰쿠바 지역도 쓰꾸바 대학 등의 3개 대학과 국제 교류가 가능한 연구소 등이 지역 성장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대만의 신추 지역 역시 테크노 파크를 조성하여 비메모리 반도체 중심으로 TSMC와 같은 첨단 기업의 공장 및 주거단지, 행정기관까지 집적을 하였다. 신추에서는 정부가 회사에 직접 투자하기도 하고 부품 및 시스템 제조업체가 모두 한 곳에 모일 수 있도록 하여 시너지를 높였다. 이 분야에서 뒤늦게 출발한 중국은 베이징대, 칭화대 중심으로 창업 혁신 지역인 중관촌을 개발하였으며 홍콩 인근의 선전은 첨단 산업 분야에 경제특구를 만들어 빠른 성장을 이뤄내었다.
우리나라의 국가적 창업혁신 클러스터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해결 과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 첫째, 대학과 투자기관 등의 생태계를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술창업을 위해 카이스트나 포스텍에서 기술 인력 인재들을 배출했으나 강남, 테헤란 밸리, 분당 및 판교 지역과의 대학 차원의 협력체계는 미흡하다. 교육부 감사를 받는 대학들이 혁신창업 클러스터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투자 역시 강남에 집중된 양상으로 90% 이상의 벤처캐피털들이 강남에 위치해 있다.
둘째, 혁신 클러스터에 창업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 정부 주도로 혁신 클러스터가 디자인도면서 연구 인력들이 단기간에 많이 모으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으나 연구 개발 역량을 사업화하는 데에는 기획이 부족했다. 혁신 클러스터가 지속적으로 발전되려면, 대만의 신추 사례와 같이 민간 스타트업들에게 전체 공간의 10~20% 이상 지역 할당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지역 간의 격차 해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실리콘 밸리의 국회의원인 로 카나는 최근 출판한 ‘디지털 시대의 존엄성’이란 책에서 실리콘 밸리의 성공이 미국의 다른 전통적인 지역에 부가 전가되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체적으로 네이버나 카카오가 제 2 캠퍼스를 부산이나 광주에 만들 수 있을까. 역량 있는 IT 개발자들을 구할 수 있는 남방한계선이 판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적으로 조금만 떨어져도 협업이 어렵고 원격근무 도입에 문제를 겪고 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원격근무가 도입이 많아졌으나 여전히 대면을 통한 업무처리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 외에도 자녀 교육이나 문화 인프라 등 국가적 차원의 고려 사항도 많다.
한동안 다음과 넥슨이 본사를 제주도로 옮기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몇몇 회사들이 창의적 공간에서 업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혁신창업 클러스터가 지속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전성민 벤처창업학회 회장 /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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