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디지털 성범죄 가운데 대다수는 애인이나 배우자, 지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25·여)씨는 대학교 때 만난 남자친구가 헤어진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연락을 하며 만나자고 요구해 왔다. A씨가 이를 거절하자 전 남자친구는 당시에 불법촬영을 한 사진을 보내며 안 만나주면 친구들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전 남자친구가 집 앞에서 메시지를 보내고, 차단해도 다른 번호로 연락을 일삼으면서, A씨는 전화번호도 바꾸고 이사도 해야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전 남자친구가 새로 이사 온 집까지 찾아오고 바뀐 번호로 연락을 계속하는 일이 계속돼 A씨는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렵고 사진이 유포될까봐 인터넷을 계속 검색하며 삶이 피폐해져 갔다.
지속적인 스토킹과 유포 협박에 학교도 휴학하고 취업도 포기한 A씨는 “다 내 잘못인 것 같다”, “그런 남자를 만나지 않았어야 했다”,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해 하며 숨어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졌다.
고민 끝에 서울시 디지털성범죄 안심지원센터를 찾은 A씨는 센터 도움을 받아 전 남자친구가 협박했던 사진과 메신저 글을 모두 채증해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이후 스토킹 피해로 일상생활을 더이상 영위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개명과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진행했다. 전 남자친구는 지난 5월 검거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현재 A씨는 센터의 도움을 받아 재판 모니터링과 피해자 심리상담을 하며 일상 회복을 꿈꾸고 있다.
센터가 지난 3월29일 개관한 이후 19일까지 모두 149명의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했다. 센터는 1160개의 불법 촬영물을 삭제 지원하고 피해 지원 설계 및 모니터링 479건, 법률지원 364건, 심리·치유 지원 273건 총 2637건을 수행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총 149명의 연령대를 보면, 20대가 50명(33.6%)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30대가 28명(18.8%), 아동·청소년이 22명(14.8%)으로 뒤를 이었다.
가해자는 애인(189건, 26.1%), 채팅상대(189건, 26.1%), 지인(104건, 14.4%), 배우자(19건, 2.6%) 순으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범죄가 약 70%를 차지했다.
피해유형은 유포 불안 545건, 불법촬영 348건, 유포·재유포 313건, 성적괴롭힘 139건, 스토킹 122건 순이다. 불법촬영·유포에 따른 피해뿐 아니라 최근에는 불법 촬영물이나 합성사진을 가지고 스토킹을 하거나 성적괴롭힘을 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에는 게임, 채팅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 공간이 가진 익명성을 이용해 아동·청소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의 사진을 올려 신상정보를 유출하고, 사진을 합성해 불특정 다수에게 성희롱 대상으로 소비되도록 괴롭히는 사례도 다수 접수됐다.
센터는 경찰과 긴밀히 공조해 가해자 5명을 검거하는 성과를 올렸다.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을 불법촬영 후 유포, 게임 중 청소년에게 접근해 사진을 받아낸 후 유포 협박, 대학생 때 만난 후 3년 뒤 사진 유포 협박·스토킹, 쇼핑몰 아르바이트 불법촬영 사진 유포 등이다.
센터는 피해자 긴급 상담부터 고소장 작성, 경찰서 진술지원, 법률·소송지원, 심리치료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특히, 피해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영상물 삭제는 물론 작년 10월에 개정된 스토킹범죄 처벌법까지 적용되도록 증거물 채증을 통한 고소장을 돕고 있다.
법률자문과 심리치료에는 한국여성변호사회, 한국상담심리학회, 보라매병원 등이 지원하고 있다. 이달부터는 센터의 자체 시스템뿐 아니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개발·운영 중인 ‘불법촬영 추적시스템’도 활용해 피해 영상물을 신속하게 삭제 지원한다.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2600건 넘는 지원실적을 거둔 것은 그동안 이런 통합지원이 필요했다는 반증”이라며 “갈수록 신종 범죄가 확대 양상을 보이는 만큼 피해자 맞춤형 지원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로 고통 받는 시민들이 빠르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3월29일 서울 동작구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개관한 서울시 디지털 성범죄 안심지원센터에서 관계자들과 간담회 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진규 온라인뉴스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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