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집주소' 새는 민사 판결문…보완입법 1년 넘게 계류
개인정보 노출로 보복범죄 우려…손해배상청구도 위축
여야 공감하면서 처리는 안 해…법조계 "조속한 법개정 필요"
2022-08-04 06:00:00 2022-08-04 06:00:00
[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에서, 판결문에 피해자 집 주소 등 개인정보가 그대로 적시돼 가해자에게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가해자의 보복성 범죄가 우려되는 가운데 개인정보 노출을 꺼리는 성범죄 피해자의 경우 보복범죄 두려움이 더 크다. 국회가 관련법을 고치려 나섰지만 1년반 동안 계류 중인 채 진전이 없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국회가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민사소송 절차상 범죄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가릴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긴 민사소송법 개정안은 이날 기준으로 총 3건이 발의돼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송절차 중 소송기록 열람·복사 또는 소장과 준비서면 부본 송달시 원고 등 사건관계인의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개정안을 냈다. 같은 당 김남국 의원은 판결문 작성시에도 법관 직권으로 또는 당사자 신청에 따라 원고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추가했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 역시 법원 직권이나 원고 요청에 따라 판결문에 개인정보 전부 또는 일부를 가리고 송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지난 2020년 11월에, 김 의원과 서 의원은 각각 12월에 개정안을 제출했다.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듬해인 지난해 2월22일 이들 개정안을 상정해 일단 검토에 들어갔으나, 그 뒤로는 아무런 진전이 없다. 
 
민사 판결문 개인정보의 노출 문제는 약 4년 전에도 거론된 바 있다. 지난 2018년 10월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자신을 성범죄 피해자라고 밝힌 A씨는 “가해자는 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고 작년에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 판결도 나왔다”며 “민사 판결문에 제 연락처와 집주소 등 인적사항이 그대로 기재된 채 단 1의 보호도 없이 가해자에게 송달됐다”고 주장했다. 
 
앞서 20대 국회도 이 같은 문제점에 공감했다. 박 의원과 윤상직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피해자 원고의 인적사항을 가릴 수 있도록 하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각각 냈다. 그러나 두 개정안 모두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지난 국회부터 현재까지 보완입법은 꾸준히 발의됐으나 제도화되지 못한 채 국회에서 맴돌기만 하는 것이다. 
 
배상명령을 활용하면 피해자가 개인정보 노출 없이 가해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배상명령이란 형사사건 범죄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물적 피해나 치료비, 위자료 등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배상액 산정으로 인해 형사재판이 길어질 수 있고 법원이 배상명령 신청을 인용하는 경우도 많지 않아 활용도가 낮다. 
 
실제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처리된 배상명령은 총 1만8478건인데, 인용된 건 9195건으로 49.8% 수준이다.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그마저 대다수는 사기·공갈 사건이다. 성범죄 피해자의 배상명령 신청은 극소수다. 2020년 전국 지방법원에 신청된 배상명령 9116건 중 강간·추행죄를 대상으로 한 배상명령 신청은 9건에 그쳤다.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위반 사건의 배상명령은 단 4건에 불과했다.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의 경우에는 2건뿐이었다. 
 
법조계에서는 범죄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 권리를 보장하고 신원 노출 방지와 보복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민사소송법 개정안의 입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성폭력 전문 변호사는 “형사소송 절차에서는 피해자 개인정보가 가려져 보호받지만 민사절차에서는 원고로 나서는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가해자에게 그대로 노출이 되고 있어, 손해배상 청구를 꺼리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며 “배상명령조차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만큼, 민사소송법을 고쳐 손해배상 청구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중앙지법. (사진=뉴시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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