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경찰국 신설의 위법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다가 여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윤 후보자는 경찰국 신설 외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치안사무 관련 회의 참석 논란, 류삼영 총경에 대한 징계조치, 이재명 의원 관련 수사와 윤석열 대통령 장모 최모씨 관련 수사 등에 대해서도 원론적 답변만 이어가자 여당 내에서조차 “소신껏 답하라”고 답답함을 표현했다. 윤 후보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검수완박 부패완판'(검찰 수사권이 완전 박탈되면 부패가 완전히 판치게 된다)에 대해서만 “동의하지 않는다”고 뚜렷하게 입장을 표명했다.
여야는 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경찰청장 인사청문회에서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공방을 이어갔다.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은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야 하지만 대통령령(시행령) 개정으로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위법성 논란이 일었다. 문진석 민주당 의원도 이런 점을 지적하며 “(경찰국 신설은)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경찰청법을 위배했다”고 비판했다. 또 “군사독재시설에 정권의 하수인으로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민중의 몽둥이로 기능한 아주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경찰의 흑역사를 거론했다. 경찰은 1991년 내무부(현 행안부)에서 독립·분리됐는데, 이번 경찰국 신설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에 의해 통제를 받게 되면서 정치적 중립이 다시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것이다. 윤 후보자는 “위법성 논란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의견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또 윤 후보자는 이해식 민주당 의원이 “경찰국 신설에 국가경찰위원회가 심의·의결을 해야 함에도 패싱하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파업 경비대책회의에 대해서도 지적이 이어졌다. 임호선 민주당 의원은 “치안사무를 수행하지 않는 행안부 장관이 이 같은 회의를 주재한 것은 사실상 월권”이라고 지적했다. 윤 후보자는 행안부 장관이 치안사무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시인하면서도 “제가 당시 후보자 신분이기도 했지만 (경찰청장을)직무대행하는 상황에서 냉정하게 깊이 있는 판단을 못한 것은 맞다”고 답했다. 이후에도 야당 의원들이 행안부 장관이 치안사무를 할 수 없음에도 특공대 투입 등을 검토하는 회의에 참석한 것이 위법이라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윤 후보자는 “청장으로 취임하게 된다면 심도 있게 검토를 해서 판단하겠다”고 즉각적인 답을 피했다.
전임 정부에서 민정수석실을 통해 이뤄진 인사가 ‘밀실인사’라는 지적에는 “일부 동의”했다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은 “전임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이뤄진 인사가 밀실 인사이고, 경찰국을 통해 오히려 양지화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 후보자는 “일정부분 공감한다”고 답했다. 이에 오영환 민주당 의원은 “박 의원 질의에 공감한다고 했는데 밀실인사에 공감하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윤 후보는 당황한 듯 답변을 하지 못하다가 재차 답변을 요구받자 그제야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발언을 수정했다. 오 의원은 “민정수석실에서 인사를 뒷받침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냐”고 묻자 또 다시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그때 당시 정부의 판단의 문제라고 생각을 한다”고 애매모호한 답을 내놨다.
윤 후보자의 모호한 답변이 이어지자 국민의힘 소속 이채익 행안위원장은 “이 자리는 윤 후보자가 경찰청장으로서 업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검증하는 자리”라며 “위원들의 질문에 정확하게 소신껏 본인의 의사를 분명하게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후보자는 김순호 경찰국 초대국장이 과거 노동운동에 이른바 ‘프락치’로 활동했다는 전력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앞서 김 국장이 1980년대 말 소속됐던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인노회)의 활동 정보를 치안본부에 넘기고 '대공공작요원'으로 활동하기 위해 경찰에 특채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김 국장의 이런 이력을 들어, 향후 경찰국이 시민활동이나 정치활동을 탄압할 것이라고 의심했다. 이에 대해 윤 후보자는 “경찰청장 후보자로서 김 국장 임명에서 추천 협의과정을 거쳤다”면서도 “지적한 부분까지 알고 고려하지는 않았다”고 발을 뺐다.
윤 후보자는 논란이 되고 있는 각종 현안에 대해서도 원론적 답변으로 일관했다.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에 대한 대기발령 징계에 대해 “현재 사실관계 확인 중이며, 확인 이후 사안의 경중에 따라 판단을 드리도록 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또 경찰서장 회의를 중단한 배경에 대통령실이나 이 장관의 지시가 있었냐는 질의에는 “없다”고 짧게 답했다.
이재명 의원과 윤 대통령 장모 최씨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원론적 수준의 답변을 했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후보자가 이날 명확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힌 부분은 ‘검수완박 부패완판’이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윤 대통령의 ‘검수완박 부패완판’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앞서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이던 지난해 3월 “검수완박이라고 하는 것은 부패를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며 검찰개혁안을 반대했다. 이에 대해 윤 후보자는 “궁극적으로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며 사실상 검수완박에 반대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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