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4’는 미국 주도로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동맹이다. 한국과 미국, 대만, 일본이 참여국이다. 말이 동맹이지, 미국이 ‘까라면 깔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에 반도체를 무기로 중국을 제압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에 나머지 3개국이 ‘NO'라고 쉽사리 반대의사를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게 ’약육강식‘ 국제관계다.
반도체 시장은 크게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로 양분된다. 매출 규모로는 메모리 반도체가 40%, 시스템 반도체는 60%를 차지한다.
올해 4월 시장조사기관 디지타임스가 발표한 2022년 반도체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매출 1위는 미국이다. 2021년 기준 전세계 한해 5559억달러(6671조원) 규모의 반도체 시장에서 2739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체 시장의 절반 가량(49.3%)을 차지한다. 미국은 CPU(중앙연산처리장치)로 대표되는 시스템반도체와 칩설계의 강자다.
2위는 한국이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독보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한국은 반도체시장 점유율이 19.3%에 달한다. 개별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분야 매출에서 세계 1위다.
3위는 대만이다. 설계도를 갖다 주면 만들어 주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 세계 1위다. 점유율 9.7%다. TSMC가 대표기업이다. 이어 4위는 차량용반도체에 특화된 유럽연합(비중 8.5%), 5위는 한때 반도체 강국으로 군림한 일본(6.6%)이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칩4’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85.7%다. 차량용 반도체 정도를 제외한 시스템과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이 용솟음치듯 자리를 딛고 일어선다며 ‘반도체 굴기’를 외치지만 ‘칩4’가 위력을 발휘하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최근 미국의 펠로시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해 중국과 대만 갈등이 고조될 때도 중국은 대만산 반도체 수입을 금지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못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칩4’에 한국이 가담하는 것은 '힘의 논리'로 따지면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중국과 척을 지는 것도 국익 차원에서 말도 안된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의 74.8%를 중국에 수출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한 메모리반도체 10개 중 7개 가량을 중국이 수입한다. 한국 반도체 수출의 최대 시장이 중국이다.
미국 입맛에 끌려다니다 한국 반도체 최대 시장을 적으로 만드는 시간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물론 중국도 반도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끝판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안다. 중국이 여러 방법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을 압박하기 시작하면 ‘고난의 행군’에 멘탈이 털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칩4’와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는 기업이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가 나서 해결할 몫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칩4’가 고조되던 지난 6월 대통령 유럽순방 당시 대통령의 가정교사 격인 최상목 경제수석은 “중국을 통한 수출호황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경제보복 가능성도 없다고 보며 중국과 우리나라의 분업체계는 원숙한 정도"라고 맞장구를 쳤다.
미중 갈등에 속이 타는 기업 분위기는 도외시한 채 국제정세의 냉혹한 틈바구니 속에서 ‘티 안나는 줄타기’를 해도 모라잘 판에 정부가 오히려 중국을 자극하고 갈등을 조장한다.
정부는 있지만 정부가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은 역시 ‘각자도생’만이 정답인 나라인가.
오승주 산업1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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