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교황이 판문점에 와서 성탄절 미사를 드리면 남북통일이 한걸음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그냥 가면 안 만나줄테니 로마까지 달려가서 얘기해보려고요.”
강명구(66) ‘평화 마라토너’는 지난 17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유라시아 비단길 아시럽 평화의 길’ 출판기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출판기념회는 오는 22일 제주에서 출발해 로마까지 1만1000km를 달리는 400일간의 여정을 알리는 일종의 출정식의 의미를 지녔다.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가 지난 17일 서울글로벌센터 ‘유라시아 비단길 아시럽 평화의 길’ 출판기념회에서 출판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하루에 1만보 걷기도 힘든 현대인들이지만, 강씨는 평화 마라토너라는 직함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지난 7년여간 꾸준히 달리며 남북통일을 외쳐왔다. 그렇게 뛴 거리만 4만km를 훌쩍 넘겨 이미 지구 한 바퀴 이상을 웃돌았다.
그는 “북미회담이 결렬된 이후 남북관계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정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뭐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교황이 판문점에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계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교황은 단순히 종교 지도자 의미의 존재를 갖는다. 권력과 부를 가진 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평화 마라토너는 달랐다. 이미 출발 전부터 최소한 악수는 가능하다는 확신을 품고 있다.
강씨는 “계획을 주위에 얘기했더니 지인 중 한 명이 교황청에 가 있는 유흥식 추기경과 연결됐다”며 “계획을 듣고 내년 1월 세계종교평화지도자회의에 참석하게 해주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단독 면담까지는 쉽지 않아도 적어도 악수하면서 얘기를 건네볼 생각”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강씨의 이번 평화 달리기의 의미는 한국의 남북통일에만 머물지 않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세계 각지에서 내전과 전쟁들이 끊이지 않는 요즘이다. 이에 그는 평화 달리기로 19개 국가를 다니며 각 국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평화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
1957년생인 그는 1990년 미국으로 이민가 20년 넘게 미국생활을 했다. 한국 나이 50세 되던 2009년 우연히 주변 권유로 마라톤을 시작했고, 42.195km 풀코스를 3시간40분만에 주파하며 남다른 재능을 발견했다.
2014년 오랜 직장생활을 마치고 삶의 전환점에 선 강씨는 무작정 미주대륙 횡단을 결심했다. 그는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메시지를 전하려고 소아암 돕기 등을 생각했는데 마침 딱 남북통일이 떠오르더라”며 “정치적인 메시지라며 후원이 다 끊겼지만, ‘이거다’라는 생각에 조깅용 유모차에 남북통일 메시지를 내걸고 달렸다”고 말했다.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가 지난 2017년 11월13일 불가리아 소피아 인근을 달리는 모습. (사진=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실향민인 부친을 둔 그는 분단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미국 횡단은 무려 125일간 생필품 75kg를 실은 유모차와 함께 남북통일을 내걸고 5200km를 달렸다. 아시안 최초의 무지원 단독 미주대륙 횡단에 성공한 그는 그 길로 평화 마라토너를 제2의 인생 삼아 한국으로 역이민했다. 국내의 해안선, DMZ, 한라~백두 평화 달리기는 물론 201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중국 단둥까지 유라시아 1만5000km를 달렸으나 아쉽게도 북한의 거부로 압록강 앞에서 평화 달리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2020년 5월 뇌경색이 찾아왔다. 우측 마비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는 3개월의 병원 치료와 재활을 거쳐 2020년 9월 한라~백두를 시작으로 다시 평화 마라토너로 뛰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나이와 병마와 싸워 소진된 체력보다 더 힘든 것은 고독이었다. 취지에 공감하는 이는 많았으나 현실적인 고민 앞에서는 하나 둘 물러섰다.
하지만 이번 '400일의 대장정'은 시작부터 여러 도움이 그에게 힘을 북돋고 있다. 강명구평화달리기 추진위원회와 <뉴스토마토>가 공동주최를 맡았으며, 남북민간교류협의회와 UN한반도평화번영재단과 (사)희망레일이 공동주관자로 나섰다. (재)우리아이재단,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한베평화재단 등도 협력과 후원을 결정했다.
그는 “전엔 부담없이 혼자 뛰는 걸 좋아했지만, 큰 물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뜻이 맞는 사람들과 손을 잡게 됐다”며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는 덕분에 이번에는 해외 첫 출발지인 베트남부터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벤트도 만들면서 로마까지 평화의 물결이 커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가 지난 17일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제주에서 로마까지 400일 평화 달리기를 앞두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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