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 깃들어 있는 정신은 진취적이고 개방적이고 거칠다. 그래서 말이 거칠고 억양(抑揚)이 세서 타지의 사람이 부산사람들 대화하는 걸 들으면 싸우는 것 같다. 부산항을 통해 사람과 물자만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문화도 유입되었다. 비행기 여행이 많지 않던 시절에 항구는 바다와 육지를 연결해주면서 순환과 소통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그래서 부산 사람들은 외래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하고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능력도 탁월하다.
부산은 해양과 아시럽 대륙을 연결하는 관문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더불어 향후 남북의 철도가 이어지고 나아가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면‘철의 실크로드’시종착역이 될 것이다. 또 급속한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급팽창하고 있는 물동량을 끌어들여 아시아의 시대를 열어갈 중심지가 될 것이다.
부산역 광장에는 아침 일찍부터 배다지 의장, 하상윤 의장, 방영식 목사, 오길석 씨 등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해 오셨던 분들과 함께 '통일의병' 그리고 '동래학춤' 명인 박소산 씨와 김도경 씨의 '액막이 타령'으로 나의 발길에 액을 물리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낙동강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는 길은 그야말로 풍광이 절경이다. 헤르만 헤세의 시구처럼 ‘이제 여름은 늙고 병 들었다.’
한여름의 폭염이 약간은 풀이 죽은 8월 말에 절룩거려 속도를 낼 수 없는 걸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가다 그만 도로에 박아 놓은 못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오른발이 좀 덜 들려 조금만 턱이 지어도 걸려 넘어진다. 그래서 무릎보호대를 했다. 그것 덕분에 자칫 무릎에 큰 부상을 입을 것을 예방했다. 그러나 넘어지면서 얼굴을 땅바닥에 스쳤다.
나는 이 긴 여정에서 무수히 많이 넘어질 것이다. 넘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이 길을 나선 것이 아니다. 두 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 지난 여정에서도 넘어졌는데 지금은 뇌경색 후유증으로 절름거리면서 넘어지지 않으리란 생각으로 길을 나선 것이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자신이 있어서 이 길을 나섰다. 뇌경색으로 쓰러져도 나의 의지마저 자빠뜨리지는 못했다.
어제(8월28일) 마침 프란체스코 교황님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평양을 방문하고 싶다는 대담이 뉴스를 통해 본 뒤라 가슴이 부풀어 오른 참이었다. 교황님이 교황님의 평양 방문이 성사 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겠지만 그것이 성사되지 않으면 한반도질곡의 중심인 판문점에서 미사를 집전해주시기를 바라면서 내가 또다시 지구의 반 바퀴를 돌고 있는 것을 아신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하다.
청도에서 대구로 넘어가는 길 팔조령은 옛날 산도적이 자주 출몰하여 8명이 조를 이루어 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해서 팔조령이라고 한다. 영남에서 한양 가는 길에 문경세재 다음으로 높은 고개를 힘겹게 오르고 대구남구청에 도착하니 서울에서 내려온 이한용 위원장을 비롯하여 배한동 교수, 김미경 교수 등 20여 명이 현수막을 들고 환영을 해준다.
일행은 이른 저녁식사를 하러 중국음식점에 갔는데 주인이 10명 예약하고 20명이 왔다고 화를 내면서 나가라고 한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하고 투덜거리면서 나왔는데 일행들은 나오질 않는다. 한참을 밖에서 서성이니 대구 사람들끼리는 다 이해한다고, 맛난 음식을 먹으려면 감수하여야 한다고 들어오라고 한다. 덕분에 짜장은 맛있게 먹었지만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꼭 그 집 음식을 먹겠다는 대구 사람들도 이해가 안 갔다.
그 자리에서 모는 사람들이 나의 건강을 염려하며 무사완주를 기원하는 덕담을 해주었고 나는 “사실 통일을 아버지 세대에 이루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셨습니다. 그렇다고 그 분들을 원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 분들은 매 끼니를 걱정하던 가난한 나라를 선진국으로 끌어올리셨습니다. 그것이 우리 아버지 세대의 시대적 소명이었습니다. 통일은 우리 세대가 감당해야하는 시대적 소명입니다. 하나 된 통일 코리아를 우리 자식들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 꼭 바티칸까지 달려가면서 평화의 공감대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키겠습니다”하고 인사말을 갈음했다.
왜관에서 김천까지 뛰고 성주의 소성리에 들르려는 계획은 무산되었다. 소성리에 코로나가 창궐하니 오지 말라고 한다. 소성리에서 사드반대 운동을 2000일째 하는 원불교 교무님들을 마음으로나마 응원한다. 바람은 언제나 서로 상충하는 기압이 만나면서 일어난다. 평화의 성지 '소성리'와 전쟁의 상징 '사드'가 만나 온 세상을 뒤엎을 평화의 바람이 일어날 것이다.
소성리의 사드는 미국에게 타이어에 박힌 못과 같은 것이다. 못이 박혀있는 동안 타이어의 바람은 빠지지 않는다. 못을 빼는 순간 타이어는 바람이 푸르르 빠지고 만다. 못을 박고 얼마간은 달릴 수 있지만 멀리 가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은 질주하는 고속도로에서 터지기 전에 미리 타이어를 바꾸어야 할 곳이다. 동네 깡패 같은 정책에서 친구가 되기 위한 정책으로 하루속히 바꾸어야 할 것이다.
모든 전쟁과 폭력의 싹은 잘라내고, 평화의 새 기운을 북돋음 하는데 달릴 때의 뜨거운 가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평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주먹을 불끈 쥐고 거리로 나간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울분을 토해낸다고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데서 시작한다. 먼저 내 가슴이 뜨거워진 연후에 내 가슴에 뜨거움을 전달하는 것, 그리하여 그 뜨거움을 응축해내는 것, 그리하여 그 뜨거운 가슴을 부둥켜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주에서 로마까지 1만1000km 평화달리기를 이어가고 있는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운데 하얀 모자 쓴 이)가 지난 29일 대구지역 방문에서 시민들의 응원을 받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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