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당일 CCTV를 확인한 결과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저녁 8시 22분쯤 이태원 ‘퀴논길’을 지나갔다. 지방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고, 퀴논길은 평상시 박 구청장의 출퇴근길이며, 구청에서 박 구청장의 집을 걸어서 6분이면 이어주는 길이다.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의 건너편에 있는 골목길이다. 이 길에도 29일 인파가 넘쳤을 것이다. 당시 박 구청장은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 여러 명이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인파가 많이 모이는데 걱정이 된다. 계속 신경 쓰고 있겠다"는 내용을 올렸다. 그러나 박 구청장은 경찰이나 소방 등 재난 관련 기관에는 연락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참사 전 인파의 안전을 위해 취한 조치도 전혀 없었다. 박 구청장은 지난 총선에서 권영세 의원의 정책특보를 맡았다. 박 구청장의 시선은 시민들의 안전에 있지 않았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참사 당일 서울이 아닌 지역에 머물렀다. 일찍 잠이 든 관계로 경찰청 상황 담당관에게서 온 1차 문자메시지와 전화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휴일이었고, 경찰청장에게 위수 지역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경찰청장이 뒤늦은 보고와 적절한 상황 대처를 하지 못한 것은 문제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문제가 있다. 윤 청장이 참사 후 기자회견에서 112 상황 대응을 비롯한 현장 대응 미흡을 지적하면서, 진상 규명과 책임 규명을 위한 감찰과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윤 청장은 참사 후 문제와 책임을 떠올리며 바라본 시선에 자신은 있지 않았다. 오직 112상황실을 비롯한 아래 직원들로만 향해 있었다.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참사 당일 용산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 일대에서 집회⋅시위를 관리했다. 저녁 9시쯤 집회가 마무리된 후 인근 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했다. 그러다 저녁 9시 30분쯤 긴급상황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고 저녁 11시 5분에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다. 삼각지역과 참사 현장 사이 거리는 약 2km에 불과하다. 대통령실 인근의 집회 시위는 행정부 수반과 관련이 있는 일이다. 이 서장으로서는 시민 안전과 거리 질서 유지와 대통령의 업무공간을 보호하는 일을 균형 있게 비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의 안전에 대해 더 예민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면 흔한 아랫사람으로서의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한 몰입에서 벗어났을지도 모르겠다. 참사 당일 이 서장의 시선은 윗사람의 공간에 먼저 머물렀던 것 같다.
정치권의 시선은 어디에 닿아있을까. 정치권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을 진정성을 두고 듣고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민에게는 정치인들이야말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여당의 지적처럼 야당의 정치인들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듯 보이고, 모든 문제 제기를 정쟁으로 몬다고 비판하는 야당의 지적처럼 여권은 행안부 장관을 비롯하여 누구 하나 책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그날 희생자들, 유족,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뛰었던 수많은 사람, 그리고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 이태원역 1번 출구에 꽃을 헌화하는 사람들은 안중에 있을까?
이 정부는 왜 사과를 하지 않느냐는 기사 제목을 봤다. 참사와 사고, 희생자와 사망자 같은 단어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다. 참사와 희생자라고 해서 정부의 책임이 더하지 않고 사고와 사망자라고 해서 정부의 책임이 덜하지 않다. 법적인 부분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뒤늦게 이런 문제에는 철두철미한 정부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구청장, 경찰청장, 나아가 행안부장관, 국회의원 등 모두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게 너무 이상적이라면 적어도 시선만이라도 국민을 향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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