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수민 기자] 대법원이 2009년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 당시 노조원들이 경찰의 강제 진압에 저항하면서 헬기 등을 훼손한 것은 정당방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0일 정부가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간부와 민주노총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노조원들의 책임을 80%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경찰관이 직무수행 중 특정한 경찰장비를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 관계 법령에서 정한 통상의 용법과 달리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직무수행은 위법하다"고 봤다.
이어 "상대방(노동자들)이 그로 인한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를 면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대항하는 과정에서 경찰장비를 손상시켰더라도 이는 위법한 공무집행으로 인한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 관련 규정을 종합했을 때 경찰이 당시 의도적으로 헬기를 낮은 고도에서 제자리 비행해 옥외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직접 그 하강풍에 노출시킨 것과 공중에서 최루액을 살포한 건 불법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당시 손상된 기중기의 수리비 등도 원심 판단처럼 노조 측에 80%나 물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국가)가 진압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기중기 공격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진압 작전 중 기중기가 손상된 것은 원고 스스로가 감수한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경찰 부상 관련 치료비 등은 노조와 노조원이 지급해야 한다고 확정했다. 차량, 채증카메라, 휴대용 무전기 손상으로 인한 손해액 또한 배상하도록 했다.
앞서 쌍용차 노조는 2009년 5∼8월 극심한 경영난과 정리해고 발표에 반발해 경기도 평택공장을 점거하며 77일간 파업 농성을 벌였다. 사측이 공장 진입을 시도하면서 양측은 물리적으로 충돌했고, 결국 경찰이 헬기와 기중기를 동원해 진압 작전에 나섰다.
경찰은 헬기에 물탱크를 부착해 조합원들이 있던 공장 옥상을 향해 다량의 최루액을 살포했고, 헬기에서 최루액을 담은 비닐봉지를 공장 옥상에 직접 떨어뜨리기도 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진압에 투입된 차량과 헬기, 기중기 등의 장비가 파손됐고 경찰관이 부상을 입어 치료비를 지출하게 됐다며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모두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노조에 13억7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 또한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배상금액은 11억6000만원으로 줄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통해 불법 농성 진압에 관한 경찰관의 직무수행과 장비 사용에 대해 그 재량의 범위와 한계에 관한 기준이 새롭게 제시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시위진압 관련 판례는 원칙적으로 경찰의 작전 수행 내지 방법 등에 관해 광범위한 재량을 인정해왔다"며 "그러나 특정한 장비를 관계 법령에서 정한 통상의 용법과 달리 사용해 타인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가했다면 그 직무수행은 위법하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의 의미를 '과잉 진압 행위에 대한 모든 대응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정당방위 성립 여부에 관해 다시 심리해 보고 그 결과에 따라 배상책임 인정 여부를 다시 판단해 보라는 취지"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1월3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쌍용차복직노동자에 대한 국가손배 임금가압류 규탄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국가손배 즉각 철회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수민 기자 su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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