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수민 기자] 기후문제가 헌법재판소까지 올라간 역사적 공개재판에서 청구인 자격으로 참석한 한 초등학생은 "이번 소송이 2030년, 그리고 2050년까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우리는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헌법재판은 정부의 부실한 기후위기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인지를 따지는 게 핵심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1일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낸 기후소송 4건을 합쳐 2차 공개변론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이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정부가 온실가스 40% 감축을 목표로 세웠는데, 이는 기후위기 대응을 하기엔 소극적 자세이고,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입니다.
초등 6학년이 직접 변론…"꿈꾸는 모든 걸 포기해야 할지도"
이날 변론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기 전 마지막으로 열리는 공개변론입니다. 특히 이번 변론엔 청구인 자격으로 초등학생이 직접 나와서 변론을 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인공은 서울 동작구 흑석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한제아양입니다. 한양은 "기후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미래세대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며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우리는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2년 전 제가 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처음 기자회견을 했을 때, 인터넷 댓글에는 '어린애가 뭘 알고 했겠어?', '부모가 시켰겠지'와 같은 댓글이 있었다. 억울했다"며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저의 진지한 생각이 무시당하는 듯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다"며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이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유일한 행동"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양은 그러면서 "지난 4월 1차 공개 변론 때 2031년 이후 미래세대에게 더 많은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정부는 '목표를 높게 세우고 실패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목표가 낫다'고 했다"며 "마치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세대의 문제 해결보다는 현재세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이날 변론에는 박덕영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유연철 전 외교통상부 기후변화대사도 전문가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했습니다. 박 교수는 파리기후협정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인 '각자의 능력에 따른 차별화된 책임'에 따르면 선진국에 속하는 우리나라가 그 책임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유 전 대사는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접근이 필요하며 '공동 책임이 원칙'이라는 국가 간의 합의를 거쳐 정부 행동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 측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은 현실 반영한 정책"
반면 정부 측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는 건 현실을 반영한 정책이라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기존 감축 목표를 대폭 상향한 것이며,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주요 선진국보다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이 늦은 점을 고려했을 때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자 변론을 앞두고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과 참여자들은 "이 소송은 단순히 국가가 기후대응을 얼마나 못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배제한 우리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아울러 "정부는 현재의 위기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의 위기도 지금의 대응 수준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서 "정부는 죽지 않을 정도의 조치를 취했으니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국가의 책임이란 대체 어디에 있는가"라고 주장했습니다.
올해 중 헌재 결론 나올 전망…기후소송으로는 아시아 최초
헌재는 이날 변론을 마지막으로 하고, 재판관들의 합의를 거쳐 올해 중 결론을 낼 전망입니다. 2020년 첫 헌법소원이 시작된 지 4년 만에 결론을 내리는 겁니다.
기후소송의 공개변론이 열린 것은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최초입니다. 헌재가 기후소송을 심리한 전례가 없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이르면 올해 9월 이전 결론이 나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후 헌법소원 마지막 공개변론일인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청소년기후소송·시민기후소송·아기기후소송·탄소중립기본계획소송 관계자들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수민 기자 su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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