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용훈 기자] "움직이는 호텔에서 18시간을 여행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은데요."
창밖으로 스쳐 지나는 바다를 바라보던 관광객 고민석(56세) 씨는 크루즈선을 타는 거 자체가 '즐거운 여행'이라고 말한다. 20년 지기 형님과 함께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는 그는 "이동시간만 놓고 보면 비록 긴 시간이지만 배 안에서의 시간을 즐기다 보면 금세 지나간다. 이동하는 시간이 여행 아닙니까"라고 되물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4시 '팬스타 드림호'는 승객 124명을 태우고 일본 오사카항을 출발해 부산항으로 향했다. '팬스타 드림호'의 오사카~부산 출항은 코로나19로 운항이 중단된 지 2년8개월 만이다. 오랜만에 승객들을 맞이하는 만큼 선내 전 객실과 편의점, 면세점 등 이용시설 모두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날 팬스타 드림호에 탑승한 승객 대부분은 가족·친구·연인과 떠나는 바닷길 여행에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6년 만에 배를 탔다는 이호동(24세) 씨는 선상에서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코로나가 끝나면 친구와 배 여행을 오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다음에도 시간적 여유가 허락된다면 크루즈 여행을 다시 한번 올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적선사 여객선 팬스타 드림호가 일본 오사카항을 출발해 부산항으로 입항하는 등 코로나19로 2년8개월간 끊겼던 한국~오카사 뱃길이 정상화를 맞았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일본 오사카항에서 출항을 준비 중인 팬스타드림호. (사진=조용훈 뉴스토마토 기자)
코로나19로 막혀있던 한·일 여객항로가 재개되면서 해운관광업계도 다시금 기지개를 켤 것으로 기대된다. 한·일 항로는 지난 2020년 3월 9일을 마지막으로 여객선 운항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를 맞은 바 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한해 95만명에 달했던 한·일 여객 규모는 2020년 6만명 수준까지 주저앉았다. 특히 우리 국적선사 팬스타라인이 운항하는 부산~오사카 노선은 지난 2002년 개설된 이래 코로나19 이전까지 약 9년간 30만여명의 여객을 수송했다.
코로나19 기간 승객을 태우지 못했던 김성률 선장은 이날 마치 만선의 꿈을 이룬 어부와 같았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선장이기도 한 김 씨는 "여객선이 존재하려면 여객이 있어야 한다"며 "코로나19로 2년 넘게 화물만 싣고 운항하면서 여객들을 언제 모실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항상 외롭고 쓸쓸했는데, 드디어 여객을 태울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 선장은 "협수로(수로가 좁은 공간)를 통해 아카시 해협대교, 세토대교 등 5개 대교를 지나는 오사카~부산 노선 특성상 항상 안전운항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위드코로나' 속 운항이 재개된 만큼 팬스타드림호 선내에는 별도 격리실을 마련해 집단감염 발생 우려도 원천 차단했다. 이동 기간 선내 발생한 코로나19 의심환자는 하선 전까지 격리실 내에서 머무르며 입항 후 정식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고 확진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배에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들도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항시 마스크를 착용했다.
국적선사 여객선 팬스타 드림호가 일본 오사카항을 출발해 부산항으로 입항하는 등 코로나19로 2년7개월간 끊겼던 한국~오카사 뱃길이 정상화를 맞았다. 사진은 팬스타드림호에서 바라본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현수교인 일본 아카시 해협대교. (사진=조용훈 뉴스토마토 기자)
이날 팬스타드림호에는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탑승한 일본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친구 추천으로 바닷길 여행에 나섰다는 노다 쿠니히로(27세) 씨는 "배 안에서 이뤄지는 레크레이션을 체험해보고 싶었다"며 "공연 내용이나 음향 등이 너무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팬스타 드림호는 저녁 식사 후 별도 마련된 공연장에서 승무원들의 장기자랑을 비롯해 마술공연, 노래경연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밤사이 쉼 없이 달려온 팬스타 드림호는 이튿날 오전 10시30분쯤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 들어섰다. 이날 입국장에는 부산~오사카 여객항로 재개 후 한국에 온 손님들을 환영하기 위한 인파로 가득했다.
첫 번째로 입국장을 빠져나온 나가야마 토시이치(80)씨, 나가야마 에이코(여·79세)씨 부부에게는 꽃목걸이와 팬스타드림호 무료 탑승권 선물이 주어졌다.
일 년에 한 번씩 한국을 찾았다는 나가야마 토시이치씨는 "한국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인데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한국을 오지 못해 정말 마음이 아팠다"며 "한국으로 오는 배 안에서 옛 지나간 추억을 되살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팬스타측에 언제 한·일 항로 운항이 재개되는지 수차례 물었다"며 "한국 정부가 한·일 항로 운항을 재개해줘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국적선사 여객선 팬스타 드림호가 일본 오사카항을 출발해 부산항으로 입항하는 등 코로나19로 2년7개월간 끊겼던 한국~오카사 뱃길이 정상화를 맞았다. 사진은 팬스타드림호 내 마련된 코로나19 의심환자 격리실. (사진=조용훈 뉴스토마토 기자)
현재 부산과 일본 잇는 항로는 부산~오사카, 부산~후쿠오카, 부산~시모노세키, 부산~대마도 총 4개다. 이 중 후쿠오카, 오사카 노선은 재개됐고 시모노세키, 대마도 노선도 막바지 운항 재개를 준비 중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 항만의 준비가 끝나는 대로 이들 항로에 대한 운항 재개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날 입국장을 찾은 송상근 해양수산부 차관은 "아직 재개되지 못한 노선이 조속히 정상화될 수 있도록 일본 당국과 지속적으로 협력하겠다"며 "주일공관을 통해 준비상황을 파악하며 대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해수부는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빠진 여객선사의 경영부담을 덜기 위해 항만시설사용료 감면과 최근 3년간 7개 선사에 120억 규모의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한 바 있다.
송 차관은 "선사들이 선박을 건조하거나 중고선을 매입할 경우 해양진흥공사 금용대출 보증 등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여객선 수요가 증가할 경우에는 지원규모를 확대하고 지원조건 문턱도 낮추겠다"고 말했다.
국적선사 여객선 팬스타 드림호가 일본 오사카항을 출발해 부산항으로 입항하는 등 코로나19로 2년7개월간 끊겼던 한국~오카사 뱃길이 정상화를 맞았다. 사진은 송상근 해양수산부 차관(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나가야마 토시이치(80)씨(오른쪽에서 세번째), 나가야마 에이코(여·79세)씨(오른쪽에서 네번째) 부부. (사진=조용훈 뉴스토마토 기자)
오사카(일본)=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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