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동물실험 중단을 촉구하는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의약품이든 화장품이든 인간을 대상으로 쓰기 전에 거쳐야 하는 과정이 동물실험입니다. 특히 의약품 분야에선 약의 종류마다 실험 대상이 되는 동물이 달라지기도 할 만큼 필수적이죠. 이런 분위기도 요즘 들어서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뉴욕주, 올해부터 동물실험 화장품 판매 금지
미국 뉴욕주는 올해부터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의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첫날부터 시행된 이 법은 화장품의 최종 형태 혹은 화장품에 포함된 성분을 살아있는 척추동물의 피부, 눈 또는 그 외 다른 부위에 적용하는 것을 동물실험으로 규정합니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기존에 뉴욕주에서 판매되고 있던 모든 동물실험 화장품도 예외 없이 판매가 금지됩니다.
미국이 동물실험 화장품 판매를 금지한 첫 번째 지역은 아닙니다. 국제 동물보호단체인 미국 휴메인 소사이어티(The Humane Society of the U.S.)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버지니아 △루이지애나 △뉴저지 △메인 △하와이 △네바다 △일리노이 △매릴랜드가 이미 뉴욕주와 비슷한 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FDA도 의무조항 삭제…유럽 기조 확대
이런 추세는 미국 내 의약품, 화장품 허가당국인 식품의약국(FDA)에서도 보입니다. 그동안 FDA는 신약 승인을 위해 설치류와 비설치류에 대한 독성시험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동물실험 의무화 조항을 삭제한 식품의약품화장품법 관련 개정안에 서명하면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시험법 기준이 제시됐습니다.
유럽은 미국보다 한발 앞서 동물실험 철폐에 나섰습니다. 네덜란드는 이미 2003년 연구용 영장류 실험 금지 법안을 제정했고, 유럽연합(EU)는 화장품 관련 동물실험 금지 규제 법안을 제정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 의약품 분야에도 적용될 예정입니다.
식약처도 동물실험 반대 대열 합류
동물실험의 입지는 한국에서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미 수년, 수십년 전부터 동물실험 반대 목소리가 거셌으니 하루이틀 일도 아닙니다. 작년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 당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최근 5년간 식품·의약품·의료기기·화장품 개발 및 안전관리 등을 위한 실험에 1256만7325마리 동물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며 동물대체시험법 마련을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에 식약처도 실질적인 움직임에 나섰습니다. 화장품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데 이어 생물학적 제제 시험 과정에서 이상독성부정시험이라는 절차를 없앤 것이죠. 이상독성부정시험이 삭제되면서 설치류나 기니피그에 생물학적 제제를 투여할 일이 없어진 셈입니다.
한국 휴메인 소사이어티가 공개한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 보급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 발의 환영 사진. (사진=한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대체시험법 마련 시급…공은 국회로
당국이 동물실험을 없애려는 기조를 정하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방법은 미국처럼 법안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입니다. 일단 상황은 긍정적입니다. 이미 작년 말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방법을 마련하자는 취지의 법률안이 발의됐으니까요.
한국 휴메인 소사이어티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지난해 12월23일 범정부 차원에서 동물대체시험법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고 동물대체시험법의 활성화를 위해 관련 연구 및 지원을 도모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 보급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법률안은 첨단 기술 등을 이용해 동물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나 동물 대체 수 감소시키는 방법을 동물대체시험법으로 정의합니다. 법률안에는 동물대체시험 활성화를 위한 5년 기본계획 수립과 국무총리 소속 동물대체시험법 활성화 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법률안을 발의한 한정애 의원은 "범정부 차원에서 첨단 기술을 이용한 동물대체시험법에 대한 정보가 적극 공유되고 관련 연구 및 지원이 이뤄지도록 법령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법안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도 과학적 발전과 전 세계 흐름에 맞춰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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