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 참석차 도쿄를 방문 중인 조현동 외교부 제1차관이 지난해 10월 25일 일본 주일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과 한미 외교차관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외교부 제공)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한일 양국이 고위급협의 채널까지 가동하고 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가운데 미국이 참여하는 3국 외교차관과 장관회담이 잇따라 열립니다. 전문가들은 과거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미국이 사실상 중재 역할을 맡았던 사례를 들어, 한국 정부가 미국을 통해 일본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10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조현동 외교부 제1차관은 오는 13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 참석을 계기로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양자회담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또 박진 외교부 장관은 오는 17~19일 개최되는 독일 뮌헨안보회의(MWC)에 참석할 예정인데, 이를 계기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만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관심은 한일 양국의 회담에서 강제동원 해법이 논의될지에 쏠려 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한일관계 개선에 주력하면서 특히 양국 간의 최대 갈등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마련에 속도를 내왔습니다. 외교부도 작년 7~9월 강제동원 피해자 측,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회를 가동하면서 의견 수렴하는 동시에 일본 측과 국장급 실무협의를 진행해왔습니다. 하지만 양국 협상은 현재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물밑으로 국장급, 차관급 협의를 이어왔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겁니다.
문제는 일본의 ‘소극적 태도’입니다. 그간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 한국 정부에 제공한 총 5억달러 상당의 유·무상 경제협력을 통해 ‘이미’ 해결된 사안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2018년 대법원의 판결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습니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12일 공개토론회에서 일본 기업이 아닌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배상금을 지급하되, 그 재원은 한일 양국 기업 등이 충당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안을 공식화한 뒤 이에 대한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입장을 고려해 나름의 ‘우회로’를 택한 겁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마저 응하지 않으면서 양측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선은 ‘미국’에 쏠립니다.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에도 협상이 교착상태에 놓였지만, 미국이 북핵 문제를 계기로 한일 양국을 협상 테이블에 모이도록 해 중재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국은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에 양국의 갈등 상황에서 중재자로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조진구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차관급 협의에서는 양측의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 진전된 논의가 있기 어렵다”며 “정부는 일본이 입장을 바꾸도록 설득해야 하는데, 미국을 움직여 일본을 설득하는 방법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양국이 강제동원 문제를 논의할 경우, 정부는 일본에 “성의 있는 호응”을 다시 강조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박 장관이 언급한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과 관련해 일본 측의 수용 여부가 협의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년)은 ‘일본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통렬한 반성과 함께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는 대목이 포함돼 있습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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