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로 한국 주요 기업들이 잇달아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이 단순히 자국 내 생산 제품뿐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메이드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를 강화하는 움직임이어서 이미 미국에 진출했거나 신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대안 마련에 부심 중입니다.
반도체·전기차 이어 전기차 충전기도 '바이 아메리카' 적용
2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전기차에 이어 전기차 충전기에도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를 적용키로 했습니다. 충전기 최종조립과 충전기 내부를 감싸는 철제 외장과 함의 제조를 미국에서 해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데요. 내년 7월부터는 총 부품 비용의 최소 55%를 미국에서 제조해야합니다. 해당 규정으로 충전기 업체인 SK 시그넷과 충전기 업체를 인수한
LG전자(066570)의 부담은 가중될 전망입니다. 미국에서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미군 참전기념비에서 태극기와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앞서 미국은 자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는 대신 10년간 중국에 시설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반도체법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미중 갈등 속 미국이 수출 규제를 강화한 것으로, 우리 반도체 주요 기업인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중국 공장 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졌습니다.
미국이 첨단 분야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겠다고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조항을 우회하는 변칙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가 지분 100%를 갖고 중국의 배터리 업체 CATL과 합작해 미국 내 공장을 짓기로 한건데요. 국내 배터리 주요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373220), SK온,
삼성SDI(006400) 등이 미국 전기차 시장을 놓고 중국 업체와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방미 중인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16일(현지시각) 특파원 간담회에서 IRA 후속조치와 관련해 "(미국측으로부터) 일정대로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장 차관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지 못하도록 한 가드레일 조항에 대해 "이 사람들(미국)이 모르고 오판하지는 않겠구나 싶게 디테일까지 잘 전달돼 있었다"며 "긍정적 답변도 있었지만, 최종 결과까지는 계속 협의하겠다는 컨센서스가 있었다"고 언급했습니다. 포드의 IRA 변칙에 대해선 "그런 것이 확대되면 우리 기업의 투자 기회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문제점을 제기했더니, 그쪽에서도 더 살펴보겠다는 입장이었다"고 답했습니다.
먹구름 낀 부산항 모습.(사진=연합뉴스)
해당 업계 "정부 대응, 기업 원하는 수준에 미흡"
반도체부터 배터리, 전기차 충전시장까지 잇단 바이 아메리카 기조에 우리 기업들의 부담은 커지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범정부적 대응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현재 정부 차원의 대응이 기업이 원하는 수준까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규제 영역이 점점 확전되는 게 기업들의 고민"이라고 털어놨습니다.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우리 기업들이 국내 시장만 보고 사업하는 게 아니잖느냐"면서 "북미·유럽 등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하는데 가장 큰 북미 시장에서 이렇게 규제가 본격화된다면 사업들이 본궤도에 오르는데 까지 진통이 엄청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업계 한 인사는 "투자를 늘리자니 이미 경쟁이 심화된 상태라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지가 미지수고, 투자를 줄이자니 미국의 지원을 못 받게 돼 버렸다"면서 "그야말로 양날의 칼에 선 심경"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존의 주요 업체들 뿐 아니라 사업에 새롭게 뛰어드는 국내 사업체들도 많은데, 특정기업 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미국이 자국의 산업 보호를 위해 자국중심주의 정책과 차별적 규제를 확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습니다.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겁니다.
이와 별개로 미국의 각종 통상 규제 확대에 따른 기업 내부의 전문성 제고도 지적되는데요.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 교수는 "미국의 행동에 대응할 만한 역량을 갖춘 전문가 집단이 굉장히 부족하다"며 "결국 기업 운영에서 정보와 판단의 영역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웅희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오히려 정보적인 측면에서는 기업이 더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공식적인 협상력은 없겠지만 비공식적 인적 네트워크를 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이 교수는 "미국의 기독교 네트워크나 월남전 참전 용사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보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정부가 미국과의 가치 동맹을 강조하는 동시에 기업의 인맥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투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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