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K팝은 이렇게나 확장성이 있고 다채롭게 뻗어갈 수 있는 것. 25~26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에스파(aespa)의 첫 콘서트 '싱크 : 하이퍼 라인(2023 aespa 1st Concert SYNK : HYPER LINE)'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스파는 코로나 시기 결성된 그룹이자 메타버스(가상세계)라는 독특한 콘셉트와 세계관을 표방해온 팀입니다. '블랙맘바(Black Mamba)', '넥스트 레벨(Nest Level)', '새비지(Savage)'까지 갓 데뷔한 신예로서는 이례적인 3연속 히트. 지난해 100만장 넘는 음반 판매고로 4세대 걸그룹 열풍을 주도해오고 있습니다.
이날 열린 데뷔 후 첫 공연에서 그룹은 'K팝이 왜 단순히 음악 만이 아닌지'를 보여주는 데 충실했습니다. 데뷔일로부터 2년 3개월 가량 가상공간을 무대로 쌓아온 유기적인 서사와 시각화를 현실에서 실증한 순간. 양일간 공연장에 모인 1만명과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를 통해 본 세계 79개 지역의 '마이(에스파 글로벌 팬덤명)'가 들썩였습니다.
25~26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에스파(aespa)의 첫 콘서트 '싱크 : 하이퍼 라인(2023 aespa 1st Concert SYNK : HYPER LINE)'. 사진=SM엔터테인먼트
콘서트 포문을 연 첫 곡 '걸스(Girls)'부터 뒤섞여 출렁대는 가상과 현실의 혼합 세계. 멤버 윈터가 리프트 무대에서 일렉 기타를 연주할 때, 스크린 속 그의 아바타가 칼을 쥐는 모습이 교차되는가 하면, 카리나의 솔로 무대 '메나쥬리(menagerie)', '도깨비불'에선 투명 LED가 아바타와의 연결성을 연출로 표현하는 식. 이날 공연 제목 '하이퍼 라인' 역시 에스파와 아바타, 팬덤 마이가 연결된다는 콘셉트를 내걸었습니다.
앞서도 그룹은 유튜브 공식 채널에 3부작 영상을 선보이며 팀 정체성과 세계관을 꾸준히 알려온 바 있습니다. '무규칙·무정형·무한의 영역'인 광야란 공간을 무대로, 멤버들과 분신인 아바타 '아이(ae)'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아바타와의 연결을 방해하는 '블랙 맘바(Black Mamba)'에 대항하고, 광야로 향하기 위해 '넥스트 레벨(Next Level)'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편견과 강박 등에 대한 성장의 문제를 딛고 정체성을 공고히 해간다는 것.
윈터는 칼과 총 등 다양한 무기를 사용할 줄 아는 무기상이며, 닝닝은 해커, 지젤은 외국어를 할 줄 아는 능력의 제노글로시 등 캐릭터로 변신합니다. 메타버스 기술을 선도하며 흡사 영화 '마블' 같은 스케일의 'K팝 시각화'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이날 '넥스트 레벨'-'블랙 맘바'까지 이어진 히트곡 무대 순서 때 날카로운 레이저 구성을 펼치고, "아이(아바타)의 옷을 바꿔 입히는 날까지 열심히 하겠다(윈터)"고 할 때, 그간 뮤직비디오와 무대에서 보여준 스토리들을 물리적 실체의 공간에서 구현한 이번 공연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25~26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에스파(aespa)의 첫 콘서트 '싱크 : 하이퍼 라인(2023 aespa 1st Concert SYNK : HYPER LINE)'. 사진=SM엔터테인먼트
사실 이번 에스파 콘서트는 최근 SM·카카오 동맹과 하이브의 경영권 다툼으로 뒤숭숭한 상황에서 열렸습니다. 콘서트 준비과정에서 새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와 SM 현 경영진과 마찰로 앨범 발매가 미뤄지는 상황을 겪기도 했습니다. 앞서 이 전 프로듀서는 에스파 새 음반에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 '나무심기' 가사를 넣을 것을 주문했지만, SM 현 경영진이 이를 걷어 내기로 한 바 있습니다.
새 앨범에 실릴 7곡들을 이번 콘서트에서 '미공개 신곡'이란 제목으로 들려준 이유입니다. 기존 에스파의 히트곡들을 이을 강렬한 댄스 장르의 타이틀곡으로 추정되는 '솔티 앤드 스위트(Salty & Sweet)'를 비롯해 몽환적인 '아임 언해피' 등 대표곡들은 귀에 확확 감기는 멜로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SM 퍼포먼스 디렉터 심재원이 콘서트 총연출을 맡아 역동적이면서도 깔끔한 무대 구성을 디자인했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와 에스파가 보여준 이번 콘서트는 ‘K팝의 시각화’. 이른바 ‘SM사태’에도 흔들리지 않는 SM 레거시를 확인한 자리. 음악이 다양한 IP로 어떻게 뻗어갈 수 있는지, 에스파가 보여준 성공 방정식은 오늘날 위기론이 대두되는 K팝에 새로운 질문들을 던질 것으로 보입니다.
25~26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에스파(aespa)의 첫 콘서트 '싱크 : 하이퍼 라인(2023 aespa 1st Concert SYNK : HYPER LINE)'. 사진=SM엔터테인먼트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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