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영석 위원장이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윤혜원 기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신규 공공 투자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기준을 완화하는 문제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총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예타 면제 기준 완화가 표심을 끌어올 사안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기 때문인데요. 포퓰리즘(대중 영합의주의) 논란으로 여당이 속도 조절에 들어간 모습이지만,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표심을 의식한 여야가 막판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입니다.
총선 포퓰리즘 논란에…일단 제동 건 여당
국민의힘은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예타 면제 기준 완화를 골자로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의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국가재정법 개정안 통과 문제를 두고 야당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데요.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예타 면제 완화는 물가 상승과 사업 원가 상승을 고려한 것이라고 하지만,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윤 원내대표는 “이런 국민의 우려는 여야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 전체의 문제”라며 “민생이 몹시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한 후 법안을 더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지난 12일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됐습니다. 이 법안은 사회간접자본(SOC)과 국가 연구개발(R&D)사업의 예타 대상 사업 면제 금액 기준을 총사업비 500억원(국비 300억원 이상)에서 1000억원(국비 500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타 대상 기준의 조정은 1999년 예타 제도가 도입된 후 24년 만에 처음입니다.
총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예타 면제 기준을 완화하는 법안이 상임위 단계에서의 처리가 가속화하면서 일각에서는 포퓰리즘과 재정 건전성 악화를 지적하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예타 면제 기준 완화로 선거에서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지역구 사업이 무분별하게 쏟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자 여당이 먼저 법안 처리의 속도를 조정하고 나선 양상입니다.
TK 신공항·광주 군공항 '짬짜미' 보여준 여야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도로·철도·항만 등 수백억원대 규모의 사회간접자본 등이 추진 과정에서 수혜를 입을 전망입니다. 당장 2021년 12월부터 예타가 진행 중인 충남 서산공항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서산공항 건립에 소요되는 예산은 총 530억원으로 예상되는데, 예타 면제 기준이 1000억원으로 상향되면 사업의 타당성을 따지는 과정을 생략하고 사업 진행이 가능해집니다.
인천시의 제2인천의료원 설립과 울산시의 R&D 비즈니스밸리 연결도로 개설도 국가재정법 개정안의 통과로 혜택을 볼 사업으로 관측되는데요. 총 사업비 4000억 원 중 국비 500억 원이 지원되는 제2인천의료원은 지방의료원이라는 특수성으로 수익성이 낮게 점쳐져 예타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R&D 비즈니스밸리 연결도로 개설도 사업비가 889억원에 달하는 만큼, 면제 기준이 완화되면 그 적용 대상이 됩니다.
이처럼 예타 면제 기준 완화가 지역구의 대형 사업과 직결돼 있다 보니, 결국 여야가 다음 총선 전에 통과에 합의를 보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현재 국민의힘은 예타 면제 기준 완화와 재정준칙의 도입을 병행해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민주당은 재정준칙 법제화 자체에 반대하고 있죠. 다만 민주당이 재정준칙 도입에 협조하는 대신 사회적경제기본법(사경법) 처리를 맞바꾸자고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여야는 지역구 사안에서는 서로 협치를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지난 1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대구·경북 신공항 특별법과 광주 군 공항 특별법이 나란히 통과됐습니다. 이로써 여야 각각의 ‘텃밭’으로 불리는 지역에서 사업비만 20조원으로 추산되는 사업들이 예타를 면제받게 됐습니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소장은 이날 본지와 한 통화에서 “국민의힘은 전 정권 시절에 정부를 향해 재정 건전성을 위한 조치를 마련하라고 줄곧 요구해 왔던 만큼 예타 면제 완화에 마냥 찬성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꼭 필요한 사업이면 현행법이 정하는 기준으로도 예타를 통과할 것이라는 점에서 개정안의 순수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윤혜원 기자 hwy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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