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전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 일본 토요타가 전기차 시장에선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업계의 전기차 전환은 빨라지고 있는데 토요타의 속도는 너무 느리기 때문인데요.
업계에선 과거 소니 등 일본 전자업체가 글로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경쟁력이 약화된 '갈라파고스 신드롬'이 전기차 시장에서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사토 코지 토요타 신임 최고경영자(CEO).(사진=토요타)
12일 업계에 따르면 토요타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는 미국에 이어 오는 21일 브랜드 최초의 전용 전기차 'RZ450e'를 국내 출시합니다.
RZ 450e는 토요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TNGA를 적용한 모델로 토요타의 첫 전용 전기차 bZ4X와 같은 플랫폼을 공유합니다. 앞서 렉서스는 지난해 내연기관차 UX300h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 UX300e를 국내에 선보였지만 짧은 주행거리 등 낮은 상품성으로 올 들어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세그먼트 별 다양한 전기차를 출시한 것과 달리 이제야 첫 전용 전기차를 내놓은 만큼 벌어진 간극을 좁힐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데요.
토요타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자동차 1048만대를 판매하며 세계 1위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전기차 판매량은 2만4000대로 28위에 그쳤습니다. 토요타 전체 판매량의 0.2% 수준입니다.
그동안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해왔습니다. 전기차 등장 이전까지 하이브리드는 고연비·친환경의 대명사였습니다. 특히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은 전 세계 친환경 자동차 기술을 선도했고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성공은 전동화로의 전환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실제 지난해 말 토요다 아키오 사장은 "자동차 업계 종사자 중 '침묵하는 다수'는 전기차를 유일한 선택지로 갖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기차가 대세인 상황에서 여전히 하이브리드차가 전기차 보다 경쟁력 있다는 인식이 드러나는 발언입니다.
토요타가 망설이는 사이 세계 각국의 탄소 배출 규제는 강화되고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내연기관차 생산과 판매 중단을 선언함에 따라 전기차를 개발하지 않고서는 점유율 확대가 힘든 상황이 됐습니다. 결국 경쟁업체와의 주행거리, 충전속도 격차가 너무 많이 벌어졌죠.
콘야마 마나부 한국토요타 사장.(사진=한국토요타)
토요타는 전기차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고 판단, 지난해 4월 첫 전용 전기차 bZ4X를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출시 2개월 만에 바퀴 볼트가 풀리는 현상이 발견되면서 전량 리콜에 들어가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에 토요타는 지난 4월 14년 만에 수장을 교체하며 대대적인 혁신에 나섰는데요. 새로운 수장이 된 사토 코지 사장은 2026년까지 전기차 10종을 새로 투입해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150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습니다. 렉서스는 2035년까지 전 차종을 전기차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업계의 시선은 달갑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여전히 토요타는 전기차 올인이 아닌 가솔린차, 하이브리드차, 수소차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멀티 패스웨이' 전략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업계 관계자는 "토요타는 고급 브랜드 렉서스의 전기차로 수익을 낸다는 전략이지만 미국 고급차 시장에서는 이미 테슬라가 렉서스를 압도하고 있다"며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등 독일차도 고급 전기차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상황이어서 판매를 본격화하는 2025년에는 이미 격차가 클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하이브리드에 올인하면서 일본차 자체가 갈라파고스로 전락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미 선두그룹과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기술적으로 쫓아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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