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스웨덴 룰레오에서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중국 정찰풍선의 미국 본토 영공 침입 사태로 전격 취소됐던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이 다시 중국을 찾았습니다. 대립과 경쟁을 이어가던 미국과 중국이 대화 채널을 개설함으로써 ‘리스크 줄이기’에 나선 겁니다.
미국이 중국과 본격적인 대화에 나서면서, 한국 역시 외교적 공간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싱하이밍 대사를 직접 겨냥해 비판하는 등의 행보를 고려할 때, 오히려 한중관계를 더욱 최악으로 내몰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미중 기대감 낮추지만…첫 고위급 논의에 전 세계 주목
블링컨 장관은 18일(현지시간)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앞서 블링컨 장관은 이번 방중을 통해 중국 고위 관리들과 만나 미중 관계를 책임있게 관리하기 위한 양국 간의 열린 소통 채널을 중요성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2월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중국 정찰풍선의 미국 영공 침공 문제가 불거지면서 출국 당일 취소됐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을 처음 방문하는데요. 미 국무장관으로서,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블링컨 장관이 처음이고,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지난 2018년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방중했습니다.
양측은 이번 회담에 대해 일단 건조한 톤으로 기대감을 낮추는 모양새입니다.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지난 14일 “많은 결과물을 기대하는 방문은 아니다”라며 “미중이 서로 대하는 방식을 바꾸거나 어떤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로 (블링컨 장관이) 중국에 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최근 중국의 쿠바 내 도청기지 설치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미중 갈등의 불씨가 깊어질 수 있다는 점과 자칫 성과없는 이벤트로 끝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조심스러운 분위기지만, 계속되는 갈등 국면에 놓인 양국의 충돌 방지 장치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고위급 논의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블링컨 장관이 이번 방중 기간 도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친강 외교부장 등을 만날 것으로 보이는데요. 실제 어느 수준의 결과를 이끌어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14일 언론 브리핑에서 블링컨 장관의 방중 목적을 △양국 경쟁을 관리하고 오산을 방지하기 위한 소통 채널 구축 △기후와 거시경제 안정 등 국제적 도전에 대한 협조 △미국의 가치와 이해 강조 등 3가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미 국무부에서 열린 국빈오찬에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블링컨 국무장관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공동취재)
미중 대화 국면 땐 외교 공간 열린다…문제는 '윤 대통령'
미중이 소통 채널까지 만들며 디커플링(탈동조화)가 아닌 디리스킹(위험회피)를 추구하면서 덩달아 한국도 외교적 공간이 넓어졌습니다. 특히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을 계속해감행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중국 역할론을 이끌어내, 한반도 안보 안정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성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지난 12일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블링컨 장관의 베이징 회담에서 북한이 현안에 오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며 “블링컨 장관은 우리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비핵화에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중국이 역할을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한국 측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하지만 정작 윤 대통령이 중국과 날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찾아온 기회를 오히려 최악으로 치닫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싱 대사가 지난 8일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발언한 데 대한 윤 대통령의 대응이 대표적인데요. 당시 우리 외교부는 싱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고, 중국 당국도 정재호 주중대사를 초치해 양국 관계가 살얼음판을 걸었습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직접 싱 대사를 겨냥해 “부적절한 처신에 국민들이 불쾌해한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싱 대사를 비판하면서 중국에 사과 혹은 싱 대사에 대한 인사 조치를 강하게 압박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일각에서는 대사 급의 일로, 대통령이 나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과 함께 윤 대통령이 직접 중국이 이 문제를 풀 출구전력을 봉쇄해버렸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이날 <뉴스토마토>에 “중국 측에서 외교적으로 실수를 한 것인데, 이를 대하는 윤 대통령의 발언 등을 볼 때 한국 정부가 반중을 넘어 한중 관계 파탄을 전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며 “반중 정서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모습 등을 볼 때, 중국과 관계 개선을 할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습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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